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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8 14:17

1919년 2.8독립선언서 기타/역사2017.02.08 14:17

1919년 2월 8일은 재일본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이다. 우리는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만 알고 있지 2.8독립선언서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 기미독립선언서 보다 훨씬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강경한 내용이다. 


2·8 독립선언서(현대식으로 번역)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획득한 세계의 만국 앞에 독립을 선언하노라.

 

4천 3백 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은 실로 세계의 오래된 민족 중의 하나이다. 비록 한 때 중국의 역사를 섬긴 일은 있었으나, 이것은 양국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한 것이었고 조선은 항상 우리 민족의 조선이고 한 번도 통일 국가를 잃고 다른 민족의 실질적 지배를 받은 일이 없도다. 일본은 조선이 일본과 이와 잇몸의 관계에 있음을 자각함이라 하여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앞장 서 승인하였고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여러 나라도 독립을 승인할뿐더러 이를 보전하기로 약속하였다. 한국은 그 뜻에 감사하여 단단히 마음먹고 제반개혁과 국력의 충실을 도모하였다.



 

당시 러시아의 세력이 남하하여 동양의 평화와 한국의 안녕을 위협하니 일본은 한국과 동맹을 체결하여 러일전쟁을 시작하였다. 동양의 평화와 한국의 독립보전은 실로 이 동맹의 취지인지라 한국은 더욱 그 호의에 감사하여 육해군의 원조는 불가능하였으나 주권의 위엄까지 희생하여 가능한 온갖 의무를 다하여서 동양평화와 한국독립의 양대 목적을 추구하였다. 급기야 전쟁이 종결되고 당시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의 중재로 러일 간의 강화회담(포츠머스 조약)이 열리게 되니 일본은 동맹국인 한국의 참가를 불허하고 러일 양국 대표자 간에 임의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안건으로 올렸으며, 일본은 우월한 병력을 가지고 한국의 독립을 보전한다는 옛약속을 위반하여 미련하고 어리석은 당시 한국 황제와 그 정부를 위협하고 속여서 “한국의 충실함이 족히 독립을 득할 만한 시기까지라”는 조건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이를 일본의 보호국을 만들었다. 일본은 한국으로 하여금 세계 여러나라들과 직접 교섭할 길을 차단하여 “상당한 시기까지라”는 조건으로 사법, 경찰권을 빼앗았고, 다시 “징병령 실시까지라”는 조건으로 군대를 해산하며 민간의 무기를 압수하고 일본군대와 헌병경찰을 각지에 두루 배치하며 심지어 황궁의 경비까지 일본경찰을 사용하고 이렇게 하여 한국으로 하여금 전혀 저항하지 못하게 만든 후에, 다소 명철하다 하는 한국 황제를 쫓아내고 황태자를 옹립하고 일본의 주구로 소위 합병내각을 조직하여 비밀과 무력에 내부에서 합병조약을 체결하니 이에 우리 민족은 건국 이래 반만년에 자기를 지도하고 원조하노라 하는 우방의 군국적 야심에 희생되었도다.

 

실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행위는 사기와 폭력에서 난 것이니 실상 이렇게 위대한 사기의 성공은 세계흥망사에 특필할 인류의 대욕치욕이라 할 것이다. 보호조약을 체결할 때에 황제와 적신(賊臣) 아닌 몇몇 대신들은 모든 반항수단을 다하였고 발표 후에도 전 국민은 맨몸으로 가능한 온갖 반항을 다였으며 사법, 경찰권을 빼앗길 때도 군대해산 시에도 그러하였고 합병을 당해서는 수중에 쇠붙이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온갖 반항운동을 다하다가 정예한 일본무기에 희생이 된 자가 부지기수다. 그 후로 15년 독립을 회복하려는 운동으로 희생된 자 수십만이며 참혹한 헌병정치 아래에서 손발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면서도 일찍이 독립운동이 끊긴 적이 없나니 이로 권하여도 한일합병이 조선민족의 의사가 아님을 알지어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은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심의 사기와 폭력 아래 우리 민족의 의사에 반하는 운명을 당하였으니 정의로 세계를 개조하는 이 때에 당연히 이를 바로잡기를 세계에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또 오늘날 세계 개조의 주역이 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은 보호와 합병을 지난 날 자기들이 솔선하여 승인한 잘못이 있는 까닭으로, 이 때에 지난날의 잘못을 속죄할 의무가 있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또 합병 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 시의 선언에 반하여 우리 민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대하는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계속 사용하여 우리 민족에게는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종교의 자유, 기업의 자유까지도 적지 않이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제기관이 조선민족의 인권을 침해하였다.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과 일본인 간의 우열의 차별을 말하며 우리 민족에게는 일본인에 비하여 열등한 교육을 실시하여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본인의 노예로 살게 할뿐 아니라 역사를 개조하여 우리 민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하고 업신여겨 소수의 사람 이외는 정부의 여러 기관과 교통, 통신, 군사시설 등 모든 기관에 전부 혹은 대부분 일본인을 사용하여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국가생활에 지능과 경험을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니 우리는 결코 이러한 무력과 억압으로 제멋대로 처리하는 잘못된 불평등한 정치 하에서 생존과 발전을 누리기 불가능하다. 그 뿐 아니라 원래 인구가 넘치는 조선에 무제한으로 이민을 장려하고 보조하니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해외에 유리함을 면치 못하여 국가의 모든 기관은 물론이고 사설의 모든 기관에까지 일본인을 채용하여 한편 조선인으로 하여금 직업을 잃어버리게 하며, 한편으로 조선인의 부를 일본으로 유출케 하고 상공업에도 일본인에게만 특수한 편익을 부여하여 조선인으로 하여금 산업적 발전과 부흥의 기회를 상실케 하였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우리 민족과 일본과의 이해는 서로 배치되며 항상 그 해를 보는 자는 우리 민족이니,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의 생존할 권리를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노라.

 

마지막으로 동양 평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강대국이던 러시아는 이미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신국가를 건설하려던 중이며 중국도 그러하며 더욱이 이후 국제연맹이 실현되어 다시 군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할 강국이 없을 것이다. 그러할진대 한국을 합병한 최대이유가 소멸되었을 뿐더러 만일 조선민족이 무수한 혁명과 민란을 일으킨다면 일본에게 합병된 한국은 동양평화를 뒤흔들 불행의 근원이 될 것이다. 우리 미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자유를 추구할 것이나 만일 이로써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여 뜨거운 피를 흘릴지니 이 어찌 동양평화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우리 민족에게는 한 명의 병사도 없다. 우리 민족은 병력으로써 일본에 저항할 실력이 없다. 그러나 일본이 만일 우리 민족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할진대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하노라.

 

우리 민족은 유구하게 고상한 문화를 지녀왔으며, 반만년 동안 국가생활의 경험을 가진 민족이다. 비록 다년간 전제정치 아래에서 여러 해독과 불행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할지라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선진국의 모범을 따라 새 국가를 건설한 뒤에는 건국 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민족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할 줄을 믿는 바이다.

 

이에 우리 민족은 일본이나 혹은 세계 각국이 우리 민족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주기를 요구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생존을 위하여 자유의 행동을 취하여 이로써 독립을 이룩할 것을 선언하노라.

 

 

<결의문>

 

1. 본단은 한일합병이 우리 민족의 자유의사에서 나오지 않고 우리 민족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뒤흔들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단은 일본의회 및 정부에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여 대회의 결의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이루기를 요구함.

 

3. 본단은 만국강화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위의 목적을 전달하기 위하여 일본에 주재한 각국 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 해당 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인을 만국강화회의에 파견함. 위 위원은 앞서 파견된 우리 민족의 위원과 일치행동을 취함.

 

4. 앞의 모든 항목의 요구가 실패할 때에는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함. 이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우리 민족이 그 책임을 지지 아니함. 

 

1919년 2월 8일

재일본 동경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Posted by 임종금 JKL
얼마 전 필자는 한 보수우익단체 계열의 교과서포럼에서 만들어진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를 보았다. 그 교과서에는 김구 선생이 항일 테러활동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또한 그 단체 산하의 한 모임은 백범기념관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임시정부와 윤봉길 의사가 소속된 한인애국단은 알카에다보다 더 무서운 테러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 당황하겠지만, 필자는 나름대로 그들의 논리를 분석해 보았다. 폭탄은 던졌다는 행위 자체가 불법 폭력 행위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시각을 벗어나 전 세계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객관적’으로 테러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테러를 통해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액면 그대로만 봤다면 단어 몇 글자 수정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부당한 행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비겁하게 테러 행위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더 깊은 내면에는 ‘일제는 비록 우리 민족을 억압했지만, 우리의 근대화를 일깨워준 존재’라는 생각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다. 

후자에 대한 부분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앞선 내용부터 살펴보자. 1932년 중국 상해. 평화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 행사장에 젊은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가 단상에 폭탄을 집어 던졌다. 이 장면만 살펴봐서는 분명 평화를 해친 폭력행위, 테러로 여겨질 만하다. 그러나 진정 평화는 누가 해쳤던가? 일제는 1870년대부터 근대적 무장을 앞세워 무력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우리의 수많은 동학농민군과 의병들이 일제의 총에 쓰러졌다. 만주에서 독립군들이 활약할 당시에 일제는 간도참변을 일으켜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3·1운동 시기에 일제는 또 수많은 우리 민족을 살해했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하고 우리 민족이 당했던 것 이상으로 중국인들을 살육했다. 이런 큰 역사적 흐름에서 ‘침략’이 있었고, 그에 대한 ‘저항’으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를 테러라 지칭하는 이들은 단순히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지는 그 순간의 장면을 가지고 테러라 지칭하였다.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나 흐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그 장면만 바라본 것이다. 

이건 애초에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모르는 유아적 사고에 불과하다. 역사 이해에 있어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특히 유명한 전쟁, 발명, 사건 등을 보면서 그 안의 장면에만 신경 쓰다 보면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놓치거나 그 내면에 흐르는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순신의 승리만을 기억하면서 임진왜란의 본질을 고찰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순신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보면서 ‘만약 이순신이 살아 있었다면 일본에 쳐들어가지 않았을까?’하는 유아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두 역사의 한 장면에만 집착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다시 윤봉길 얘기로 돌아가자.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전 세계는 한민족이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중국인들은 한민족을 ‘일제와 함께 싸워야 할 동맹군’으로 여기기 시작했으며, 이는 민족연대전선을 낳게 되었다. 이런 노력으로 결국 일제 패망과 함께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는 역사적 성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규정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침략과정 → 우리 민족의 저항과 운동 → 세계 여론의 환기와 독립의 약속 → 독립’이라는 큰 역사적 흐름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큰 틀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우리 민족 독립운동사에 큰 사건이었고, 지지부진한 독립운동이 일제에 대한 반격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런 유아적 실수를 토대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일까? 보통 역사의 장면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특정한 생각이나 방향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사의 한 장면을 발췌하여 넣는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넣어버리면 자신의 생각과 부조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 가운데 유리한 부분을 자르고 잘라, 한 장면만을 넣는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역사적 흐름에서 ‘의거’라고 규정해 버리면, 자신들이 교과서에 쓴 일제에 의한 근대화, 일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그 장면만을 부각하여 ‘테러’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우리 민족과 윤봉길 의사를 분리해 버렸다. 

우리 민족은 일제에 만족하고 사는데, 특정 정치세력이 무리하게 독립을 요구하려다 테러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강조한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뒤져 보아도, 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희생한 사람을 테러라는 부정적 단어를 덧씌워 기술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 워싱턴 대통령이 반란군의 수괴라고 기록되어 있고, 보스턴 차 사건이 강도질 또는 테러 행위로 적혀 있을 리 만무하다. 간디의 불복종 운동을 불법 집회, 불법 파업이라는 식으로 인도 교과서에 적혀 있을 리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일부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있게 해 준 독립운동이 테러활동으로 변신해 있다. 이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땅을 부정하는 것이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 극우세력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그들의 어이없는 주장을 보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지금 이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도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까? 우리가 역사를 냉철하게 살펴볼 수 있는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역으로 우리가 ‘아, 역사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구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구나’라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적 장면만을 꼬집어서 만든 유명한 교양서가 있다. 한국사 100장면, 세계사 100장면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책을 막상 살펴보면 그 장면에 대한 설명은 맨 처음 1~2문단에 불과하다. 나머지 3~4쪽은 그 장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에 대해 폭넓게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사적 흐름에서 전체적으로 그 장면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이런 책들을 학생에게 읽힐 때, 학생들은 역사를 이해하는 능력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역사는 스냅사진이 아니라, 활동사진(흐름)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경남신문 2009년 5월 20일자 기고글


Posted by 임종금 JK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