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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경남은 선거 혁명을 일궈냈다. 오랫동안 이어진 특정 세력의 경남 독점을 막아내고, 새로운 인물과 비전을 선택했다. 진보 성향의 무소속 도지사가 당선된 ‘경남의 선택’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경남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더 도약하는 경남이 되기 위해서는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바로 친위 공신 세력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고대에서부터 권력 교체를 한 군주는 두 가지 길을 가게 된다. 권력 기반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친위 공신 세력들을 끼고 가거나, 혹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친위 공신 세력들을 축출하고 나라의 틀을 굳건히 하는 일이다. 보통 전자의 길을 간 군주는 훗날 친위 공신 세력들의 비대해진 전횡을 막지 못하고, 새 정권의 기틀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후자의 길을 가는 경우에는 대개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일구는 명군이나 성군의 칭호를 듣는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잔혹한 임금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보통 권력 교체를 하기 위해 친위 공신 세력들은 엄청난 노력과 헌신을 주군에게 베푼다. 대개 그 주군은 권력과는 가깝지 않거나, 비주류 인물이었다. 주군은 친위 공신 세력들의 헌신적인 보살핌 아래에서 절차탁마하여 결국 권력 교체의 기회를 잡는다. 이 과정에서 대개 친위 공신 세력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 귀양을 가거나, 낮은 지위나 한직에 머무르는 등 온갖 어려움을 다 겪게 된다. 

그들의 땀과 눈물을 아는 군주는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내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는 곧 실패한 정권으로 이어진다. 당장 우리 역사에서 고려의 왕건, 조선의 태조, 세조, 중종, 인조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들은 친위 공신 세력의 도움으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중용하였다. 그러나 친위 공신 세력은 스스로 세력다툼을 하거나, 강력한 권세를 영구적으로 구축하는 권문귀족이 되어간다. 결국 변화와 개혁은 멀어지고, 갈등과 분란의 소지만 남게 된다. 

물론 이들 임금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 왕건이 죽은 직후에 일어난 수많은 반란과 왕위 다툼, 조선 태조가 공신 세력과 왕자들을 정리하지 못해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세조 임금이 친위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자 그들은 스스로 훈구파가 되어 사림파와 근 반세기가 넘는 ‘피의 갈등’을 계속했다. 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중종 임금과 인조 임금은 왕권이 쇠락하여 후대 임금이 독살당하고, 외척들에게 휘둘리는 결과를 남겼다. 이 참담한 역사 앞에서 ‘권력 기반이 약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참으로 옹색해 보인다. 

반면 고려 광종, 조선 태종 등은 달랐다. 그들은 친위 공신 세력들이 어떻게 정권을 농락하고, 변화와 개혁을 가로막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들 임금은 왕권이 안정되자, 즉시 친위 공신 세력들을 축출하기 시작했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못할 짓이었지만, 총체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결국 역사 속에 빛나는 이름은 바로 그들의 이름이었다. 

경남의 정권 교체를 이룬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의 모습과 옛 임금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 당선자는 변화를 외치며 그 자리에 올랐다. 진정 경남의 변화와 혁신을 일구기 위해서는 보은과 특혜가 아니라, 공신 세력을 초월한 청산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을 발굴하고, 새 인물들의 역량을 토대로 강력한 혁신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경남 도민들의 뜻이었고, 그것을 거스를 경우에는 역사는 어떤 대답을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권력적 기반이 약하다고 하여 그들에게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지방자치제가 발전하면서 도지사의 법적·행정적 권한은 이미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 도지사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힘이 없다고 왜소하게 생각해 친위 공신 세력들에게 기댈 경우,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제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경남신문 2010년 6월 16일 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제는 [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9) 역사로 본 권력 교체의 명암 입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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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오늘을 보는 거울이다. 어제의 모습이 모여 오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역사를 ‘오늘을 보는 거울’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대하거나, 혹은 ‘그때 그 사람이 다른 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때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식의 공상에 머물곤 한다. 

그래서 이번 연재부터는 역사를 통해 오늘의 시사점을 살펴볼까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직면한 모습은 바로 20세기의 격동의 역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지난 20세기를 살펴보면, 오늘의 우리 모습이 다양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맞이한 20세기는 매우 불안정하고 요동치는 상황이었다. 개항 이후 국제질서에 편입되면서, 내부적으로는 위정척사 세력과 개화 세력, 민중 세력이 서로 대립하였고,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를 향한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만 했다. 강력한 개화정책을 펴기 위한 갑신정변도 있었고, 개화정책을 되물리기 위한 임오군란도 있었고, 동학농민항쟁과 같은 민중들의 거대한 저항도 있었다. 이것들이 되풀이되면서 조선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이 일단 정리된 것이 1894년 갑오개혁이었다. 갑오개혁과 일본의 본격적인 진출은 조선이 일본의 의도대로 나라를 개혁하고, 일본의 대륙전진기지가 되는 수순에 이르렀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는 일본을 견제하였고, 일본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 틈을 타서 당시 집권세력인 명성황후는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하였고, 당황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였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불안을 느낀 고종 임금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피하였고, 갑오개혁을 이끈 친일개화파 정권을 붕괴시켰다. 다시금 역사는 격동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를 노려보면서 한반도에는 ‘불안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 틈을 타 고종은 스스로 황제가 되고, 대한제국을 세움으로써 운신의 폭을 마련하였다. 고종 황제가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20세기는 시작되었다. 

 일단 키를 잡은 고종 황제는 두 가지 선택을 했다. 첫 번째 선택은 서양 문물의 대폭 수용이었다. 특히 전기와 전구, 전화기, 전차, 기차 등등 서양의 문물을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들여왔다. 당시 전기와 전차는 아시아에서는 일본도 들여오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학교를 짓고, 공장을 짓고, 서양 무기를 수입하는 등 고종 황제의 지출은 끝이 없었다. 고종 황제는 조급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본과 러시아의 대결 국면에서 최대한 빨리 근대화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고종 황제는 엄청난 비용을 들인 것이다. 

다음으로 고종 황제가 선택한 것은 민권운동의 탄압이었다. 고종 황제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활동을 처음에는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만민공동회가 의회 설립을 요구하면서부터 고종 황제는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종 황제는 철저히 봉건적 전제군주를 꿈꾼 사람이었다. 아마 그는 태종 이방원과 같이 강력한 왕권으로 강력한 개혁을 꿈꿨는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의회 설립이니, 민권운동은 바로 왕권을 내놓으라는 요구로 인식되었다. 이렇게 판단이 되자 그는 이들 운동을 탄압하였다. 

 고종 황제의 두 가지 선택을 보면, 당시 고종 황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어물쩍거리지 않고 서양식 근대문물을 최대한 많이, 빨리 수입하면 대한제국의 근대화는 가능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화는 단순히 서양 문물을 수입한다고 해서 마련되는 것이 아니다. 사상적인 뒷받침과 체제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근대적인 정치제도와 사회제도를 지향했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해산시켰다. 근대화의 한 축이 이미 허물어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고종 황제는 봉건군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고종 황제의 판단착오를 오늘날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환경 관련 이벤트 하나 열고는 ‘생태도시’를 꿈꾸는가 하면, 로봇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가 갑자기 로봇랜드가 들어서자 ‘첨단 로봇도시’라는 브랜드를 내세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로봇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인식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축제장을 유치하고, 대학에 몇몇 학과를 설치한다고 해서 그 도시가 로봇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가, 행사 하나 유치하거나 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화도시’가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정치권은 고종 황제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큰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위한 연구와 지원이 있어야 하며, 시민들의 의식 향상이 함께 이뤄지고, 그와 관련된 행사나 시설이 들어서면서 지역은 그 방향으로 차근차근 발전하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하나를 유치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행사가 끝난 행사장은 버려질 것이며, 큰돈을 들여서 만든 시설도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고는 그 기능을 잃을 것이다. 돈만 날린 채. 

임종금 ‘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경남신문 2009년 10월 14일 기고한 글입니다. 원제는 '역사는 오늘을 보는 거울'이었습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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