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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사대부'에 해당되는 글 2

  1. 2014.08.02 한국사 속 연대, 연합의 빛과 그늘 (2)
  2. 2008.03.24 초간략 고려사
세상에는 힘이 없는 세력이 있다. 반면에 힘이 있는 세력이 있다. 힘이 없는 세력들은 힘이 있는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 힘을 모은다. 그것은 연대나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의 연대와 연합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 우리 역사에서 적어도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연합은 백제와 신라의 동맹이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서 나제동맹을 맺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백제는 고구려에게 수도 한성을 빼앗기고 개로왕이 참수당했으며, 신라는 고구려에게 왕자를 볼모로 보내면서 신하의 나라로 자처했다. 압도적인 고구려의 국력 아래 나제동맹은 ‘고구려를 몰아내는 것’이 아닌, 그저 두 나라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나제동맹, 나당동맹은 일시적 연합일 뿐

이후 고구려의 국력이 잠시 퇴조한 틈을 타서,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를 공격하고, 많은 영토를 회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어떤 분명한 비전이나 가치에 대한 공유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고구려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한 나제동맹은 그 한계가 분명했다. 적이 사라지자, 신라는 백제를 공격했고, 백제 멸망까지 두 나라는 근 100년이 넘도록 치열한 접전을 벌여야 했다. 

신라와 당나라의 동맹도 마찬가지였다. 신라는 백제의 공격으로 최후의 보루인 대야성마저 빼앗기자 다급해졌다. 신라는 백제의 거센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당나라 또한 고구려 후방 공격을 위해 신라와 동맹을 맺었다. 나당 동맹군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킴으로써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곧바로 서로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한 서인과 남인의 연합도 마찬가지였다. 두 세력은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연합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후 두 세력은 갈등하기 시작했고, 숙종 때는 환국정치를 통해 서로를 몰살시키기에 이른다. 

‘공동의 적’ 사라지면 또 다른 전쟁 시작 이렇게 공동의 적을 상정한 가운데 성사된 연합은 얕은 수준밖에 이르지 못한다. 공동의 적이 사라진 후에는 서로 또 다른 전쟁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반면에 비전과 신념까지 공유하는 깊은 연대가 있다.

깊은 신념 공유하는 연대도 있어

대표적인 것이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고려말 신흥무장세력과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 세력 간의 연합이다. 당시 고려는 열병을 앓고 있었다. 원나라의 간섭으로 생겨난 권문세족은 고려를 좀먹고 있었고, 왜구·홍건적 등의 침공으로 국토는 피폐해졌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권문세족들은 여전히 그 힘을 누리고 있었고, 개혁을 원하던 공민왕과 신돈을 제거했다. 당시 신진사대부의 힘만으로는 권문세족을 꺾을 수 없었다. 신진사대부는 이성계와 손을 잡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둘의 연합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연합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연합이었다. 그렇게 신진사대부와 이성계의 결합은 조선 왕조를 태동시켰다. 

위의 사례와는 달리 얕은 연합에서 깊은 연대로 변환한 사례가 있다. 바로 구한말 의병전쟁이다. 일제의 강점을 막기 위해 양반 위정척사파들은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민중들도 자체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조선 시대 내내 기득권과 피지배층으로 살아왔던 두 세력이 손을 잡고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처음에 두 세력의 연합은 문제가 많았다. 양반 의병장들은 민중 의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심지어 평민 출신 의병을 죽이기도 했다. 일제라는 거대한 적 때문에 일시적으로 서로를 인정해 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두 세력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의병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1910년 이후에는 모두 공동운명체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두 세력은 만주와 연해주,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처음에 두 세력의 연합은 그저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을 뿐이었으나, 민족해방의 신념을 공유하며, 오랜 시간 동안 독립운동을 함께하는 깊은 동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깊은 연대가 꼭 좋은 역사적 사례만 낳은 것은 아니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90% 가까이 좌익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군정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손을 잡게 되었다. 이들은 반공 이념과 좌익세력 척결이라는 기치 아래 수많은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탄생시켰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연대니 연합이니 하는 얘기가 자주 들려 온다. 과연 그것이 단순한 상황 타개를 위한 논리인지, 아니면 신념과 비전을 공유하고 먼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인지 유권자들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념과 비전을 공유한 깊은 연대라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경남신문 2010년 3월 31일 자 기고글입니다. 원 제목은 [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18) 역사 속 연합과 연대" 입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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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2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임종금 JKL 2014.08.03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 급히 자료들을 백업한다고 글들을 올리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됐습니다. 저도 그걸 우려해 그제께부터 하루에 한 편 씩만을 올리고 있습니다. 유의하겠습니다.

2008. 3. 24. 19:39

초간략 고려사 과거 글들/역사연재2008. 3. 24. 19:39

 

고려는 후고구려의 임금인 궁예를 몰아내고, 호족들에 의해 추대된 왕건이 918년 건국하였다.


고려는 후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신라를 고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리하여 935년 신라는 고려에 나라를 바침으로서 고려는 후삼국 통일에 좀 더 다가가게 되었다. 마침내 고려는 후백제가 내분이 일어난 틈을 타서 후백제를 멸망시키니 이때가 936년이다.


이후 고려는 왕족과 호족들간의 내분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원인은 왕건이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결혼정책을 썼는데, 무려 27명의 왕비를 거느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왕자들이 태어나게 된다. 호족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왕자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였다. 이 혼란은 광종(재위: 949년~975년) 대에 이르러 수습된다. 광종은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했으며, '광군'이라고 하여 40만 대군을 양성하였다. 또한 노비안검법을 제정하여 호족들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과거제를 실시하여 호족들 외에 다양한 인재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였다.


광종의 뒤를 이은 경종은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토지를 원칙적으로 국가가 모두 소유하고, 대신 벼슬아치들에게는 토지의 일부에 대한 '수조권(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을 줌으로서 벼슬아치들은 거기서 나오는 세금을 가지고 먹고살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전시과 제도였다. 이를 기반으로 중앙관제가 튼튼해졌다.


이후 고려는 거란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국력을 총동원했다. 발해의 옛 땅을 근거지로 힘을 키운 거란은 3차례에 걸쳐서 고려에 침입했지만 고려의 현명한 대처로 큰 성과 없이 물러갔다.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고려는 더욱 나라를 발전시켜 11대 임금인 문종(재위: 1046년~1083년)에 이르면 나라의 모든 질서가 자리 잡혔다.


이 시기에는 각종 문화와 불교, 유학이 발전하여 고려는 번성하였으나 반면에 무신(장군)들에 대한 대접은 소홀해졌다. 이는 나중에 무신정변이 일어나는 단초가 된다.


고려의 혼란


고려가 안정을 누리기 시작하자 귀족(옛 호족)들의 기강이 흐트러져, 힘 있는 귀족들이 농민들의 토지를 마구 빼앗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17대 임금인 인종(재위: 1122년~1146년)대에 이르면 그 현상이 심각해지고, 귀족들은 왕의 자리마저 노리게 된다. 그리하여 일어난 것이 '이자겸의 난'이다.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북방에 거란을 대신하여 금나라가 등장한 것이다. 금나라는 고려가 굴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려는 두 주장으로 나뉘게 된다. 금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금나라에 순종하자는 김부식 세력과 금나라와 강경하게 맞서고, 금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는 묘청 세력이 그것이다. 하지만 김부식 세력이 승리하고, 묘청 세력은 평양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김부식에게 패배하였다.


인종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의종 임금(재위: 1146년~1170년)대에 이르면 나라의 기강은 더욱 흐트러져, 왕과 귀족들은 향락과 사치에 빠지게 된다. 또한 예전부터 있었던 무신에 대한 홀대는 점점 무신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결국 1170년, 무신들은 반란을 일으켜 왕을 몰아내고, 귀족들을 숙청하였다. 이것이 '무신정변'이다.


나라의 힘을 움켜쥔 무신들은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면서 임금을 마음대로 갈아치우는 등 극도로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였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힘없는 백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사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무신들 간의 피비린내나는 권력쟁탈전 끝에 최충헌이라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었다. 최충헌은 허수아비 임금을 내세우고, 자기 자식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었다. 그리하여 최충헌과 그의 자손들에 의해 고려가 다스려지게 되니 이것이 최씨무신정권이다. 이 시기에 무신들의 횡포는 절정에 달했으며, 백성들의 삶도 매우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몽고까지 고려를 침입(몽고의 침입: 1231년~1254년)하여 고려를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고려조정은 몽고에 항복하는 것을 거부하고, 강화도로 나라의 수도를 옮겼다. 강화도에서 왕족들과 무신들, 귀족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지만, 육지에 있는 백성들은 몽고의 침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끌려가고, 땅과 삶의 터전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황룡사 9층 목탑을 비롯한 귀중한 유산들이 몽고에 의해 파괴되었다.


최씨무신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몽고는 자신들의 항복요구를 거절한 최씨무신정권을 가만두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몇몇 사람들이 반발하여 최씨무신정권을 몰아내고, 강화도에서 개경(개성)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몽고와 화친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가 다시 정상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려는 찰나, 몽고의 간섭이 시작되었다.


몽고의 간섭으로 고려는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했다. 매년 수많은 물품을 몽고에 바쳐야 했고, 그 물품 중에는 처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몽고가 일본 원정을 결정하자, 고려는 그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준비하고, 배와 군대도 준비해야만 했다. 그리고 몽고는 자신들의 마음에 안 들면 임금을 마음대로 내쫓고, 새로운 임금을 내세우는 등 고려는 다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빠져들었다.


고려의 멸망


몽고의 간섭에서 벗어난 사람이 바로 공민왕(재위: 1351년~1374년)이다. 공민왕은 몽고의 간섭을 물리치고, 몽고가 빼앗을 고려의 영토를 회복하였으며, 귀족들이 함부로 빼앗은 백성들의 돌려주기 위하여 전민변전도감을 설치하였다. 이런 정책을 ‘공민왕의 개혁정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공민왕이 개혁정책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홍건적과 왜구가 고려에 침입하여 다시금 고려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때 이성계를 비롯한 장군들의 힘이 막강해졌다.


이성계는 새로 떠오르는 신진사대부 세력과 손을 잡고 위화도 회군(1388년)을 하여 임금을 몰아내고 허수아비 임금을 내세웠다가, 아예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바로 조선의 건국이다. 이때가 1392년이다. 고려는 이로써 475년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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