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미국' 태그의 글 목록

달력

6

« 2019/6 »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  
꼭 100년 전, 1910년 8월 22일. 일제는 통감부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앞세워 강제로 한일병합조약을 불법적으로 체결했다. 일주일 후, 8월 29일. 이 불법조약문은 공표되고,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후 100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식민지의 암흑을 걷어내고 자주독립과 번영의 역사를 일궜는가? 혹은 여전히 식민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충분한 국력과 위상을 갖춘 자주독립국으로 손색이 없다. 세계 경제 순위 15위 내외의 경제대국이며, 경제선진국클럽인 OECD 가맹국이다. 삼성을 포함하여 우리의 브랜드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G20정상회담에 참여·유치하고, 각종 국제경기를 비롯한 굵직한 행사도 많이 치러냈다. 또한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는 한류열풍이 불고 있으며, 서구에서도 조금씩 한국문화가 퍼져가고 있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했으며, 올림픽·월드컵 등 국제경기에서는 늘 상위권에 포함되어 우리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외국 사이트를 둘러봐도 KOREA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단순한 경제력을 넘어,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도 우리는 나쁘지 않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 서구에서는 우리를 ‘완벽하지는 않지만, 안정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나라로 평가한다. 제3세계에서는 드문 평가이다. 물론 현 정부 들어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일부 퇴보했다고 하나, 여전히 제3세계 국가 가운데에서는 수준급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단순한 자주독립을 넘어 세계의 중심국가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표면적인 모습 이면에는 깊은 식민지의 굴레가 씌워져 있다. 애초 대한민국 정부의 건국조차 우리의 손이 아닌, 미국이 선택한 세력이 미국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건국 직후 미국과 소련의 손에 이끌려, 500만 명 이상의 엄청난 사망자를 낸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국군의 작전권마저 미국에게 이양해야만 했다. 

경제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사회주의권과 경계에 있는 대한민국을 더욱 안정시키고, 사회주의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경제력을 키워준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근본적으로 미국에 종속적이다. 9·11 사건과 미국의 금융위기로 가장 크게 주식·환율이 흔들린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있어서도 미국의 승인이 사실상 결과를 좌우했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유력한 여야 대통령 후보가 미국 대사관에서 일종의 ‘친미 각서’를 썼다는 이야기는 외세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부업체가 우리나라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으며, 이미 알짜주식들은 일본자본에 잠식되었다. 그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정치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심지어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 행사가 버젓이 서울 한복판에 열리고, 몇몇 보수 정치인들이 그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일상적으로 일본말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다른 대통령들도 외국에 가면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로 말하려고 애쓴다. 상당수의 정치인과 재계 유력 인사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마치 자신의 고향인 것처럼 미국이나 일본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전략을 짠 후 국내로 돌아온다. 그들에게 진정한 마음의 국적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식민지 역사는 단순히 겉으로 해방을 하고, 나라를 세웠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역사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식민지 100년, 해방 65년.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위 글은 2010년 8월 18일 자 경남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제는 "[생각 키우는 역사논술] (21) 한일 강제병합 100년, 해방 65년을 바라보는 시선" 입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아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한국사 최악의 인물은 바로 이완용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완용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를 알아간다는 자체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살펴보면 몇 가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을 엿볼 수 있다. 바로 이완용도 자기 나름의 ‘소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소신은 우리가 아는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 소신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살펴보자. 

이완용의 첫 번째 소신은 ‘실리추구를 위한 변신’이다. 이완용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신을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위정척사파에 가까웠다. 개화정책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서양 문물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어 개화파들과 마찬가지로 물 건너 유학도 다녀오면서 개화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이후 아관파천을 통해 친러세력이 되었고, 다시 친미세력이 되었다가, 친일세력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그는 수많은 변신을 통해 자기에게 철저히 이익이 되도록 했다. 

문제는 ‘이익이 되면 누구와 손을 잡아도 그만’이라는 사고이다. 그 사고가 바로 매국의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1919년 3·1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이완용은 경성일보에 시위를 하는 군중들에게 고하는 글을 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군,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면 깨달아라. 제군, 미친 이가 아니라면 깨어나라.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다. 제군은 왜 죽음을 스스로 택해서 호생(好生)의 덕혜에 복종하지 호랑이 수염을 건드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일본이 지배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괜히 자존심 내세우다가 호랑이 털을 건드려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내용이다. 요샛말로 하면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왜 쓸데없이 목숨을 버리냐?’는 것이다. 이완용의 이런 논리는 현재에도 잘 통용되는 논리이다. 

이완용의 두 번째 소신은 ‘질서와 평화 중시’다. 무언가 이완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그는 이 단어들을 잘 사용하였고, 실제로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이 ‘질서와 평화’라는 단어 사이에 ‘강자와 시류에 대한 순종’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연과 세계의 대세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이 일본과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대세이며, 동양은 일본의 선의를 받아서 함께 힘을 합쳐야만 서양세력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서양의 침략이라는 폭력을 상쇄하고 ‘평화’를 낳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완용에게 독립운동을 하거나 시위를 하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질서와 평화를 어지럽히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희생과 일제의 구조적인 폭력과 착취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이완용이 그것에 대해 침묵한 이유는 바로 세 번째 소신 때문이다. 바로 ‘경쟁’이라는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는 독립협회 회원이었는데, 독립신문에 수차례 경쟁을 강조하는 글을 싣는다. 물론 그가 말하는 경쟁이란 ‘원칙과 질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따위는 접어두고, 무조건 상대를 눌러 이기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폴란드와 미국의 예를 들면서 ‘폴란드는 경쟁에서 뒤처져서 망했고, 미국은 승리했다. 좌우지간 우리가 미국처럼 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제의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는 경쟁에서 패배했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들은 시류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이완용의 논리를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들과 상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다. 필자가 일전에 반일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일제의 식민사관 논리를 전혀 극복하지 못한 것을 언급하였다. 이완용 또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이완용은 재론할 가치도 없는 최악의 인물이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느새 이완용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이완용이 살던 구한말과 21세기의 시대상황은 전혀 다르다. 논리가 비슷하다고 해서 덮어놓고 이완용과 똑같다고 누군가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완용이 내세운 논리들이 그 시대에는 매국으로 이어졌으나, 지금 우리 시대에는 그 논리들이 무엇으로 이어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완용의 논리들이 이 시대에 매국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극단적인 물질 자본주의, 이기주의, 사회적 모순과 결합하여 그 논리들이 비인간적 논리로 귀결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린 과연 이완용에게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임종금 ‘뿌리깊은 역사논술’ 저자

경남신문 2009년 12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역사는 돌고 돌뿐인가?’라는 것이다. 

한쪽을 보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 같아 보인다. 발전된 현대문명, 컴퓨터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물건을 바로 살 수 있으며, 얼굴을 보면서 전화를 할 수 있는 시대. 어르신들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세상에 경탄을 하면서 ‘정말 세상 좋아졌다’를 연발한다. 

하지만 다른 한쪽을 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가난한 사람은 아직도 굶주리고 있으며,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권력을 위한 경쟁은 그치질 않았으며,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식은 큰 변화가 없다. 아마 청동기 시대 사람들을 데려놓아도 처음에는 현대문명의 화려함에 놀라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우리들처럼 적응하고 살 것이다. 왜냐면 큰 틀에서 비슷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인가? 아니면 진보한다는 것인가? 혹은 퇴보한다는 것인가? 이 논쟁에 마침표를 찍기 전에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는 화려한 고대문명이 꽃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기를 개발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기를 생산하는 전지 항아리를 만든 것이다. 전지 항아리들은 지금도 유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은 19세기 초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볼타가 전지를 만든 것이 최초의 전지라고 알고 있다.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다. 그 규모와 정밀도는 상상을 초월해서 지금 기술로도 피라미드를 만들려고 한다면 건축학자들이 난색을 표할 정도이다. 1969년, 미국은 달에 사람을 보냈다. 이후 몇 차례 달에 사람이 갔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는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역사가 진보하거나 퇴보하거나 반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고대문명이 발달하였다. 그 문명의 근저에는 연금술의 발달에 있었다. 연금술사는 고대문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였다. 그러다 그들은 특정 금속과 몇몇 물질들을 조합하면 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알았다. 그리하여 항아리 전지를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명백하게 진보이다. 

그러나 항아리 전지는 당시 쓰일 곳이 없었다.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전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귀족들이 항아리 전지를 만지면서 찌릿찌릿하는 느낌을 즐기거나 불꽃이 튀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사치품에 불과했다. 귀족들의 취향이 변하자, 항아리 전지는 아무런 쓰임새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연금술사들은 항아리 전지를 만드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피라미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당시에 피라미드가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피라미드를 제작하는데 국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피라미드 제작과정에서 고난도의 수학적 기법과 돌을 능숙하게 다루는 어떤 방법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피라미드와 같이 소모적인 건설은 필요 없어졌으며, 그로 인해 건설과정에서 개발했던 고난도의 수학적 기법이나 돌을 다루는 기술도 함께 사장되었다. 

미국은 소련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우주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다. 미국은 국력을 기울여 우주개발에 착수했고, 어마어마한 인력과 돈을 들여 드디어 달에 사람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곧 미국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달에서 몇 번 돌아다니는 것이 미국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체제경쟁에서 이겼다는 우월감뿐이었다. 그 외에 남는 것은 엄청난 액수의 청구액이다. 미국은 이 소모적인 우주개발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고, 우주왕복선을 통해서 몇몇 실험을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 사례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필요성’이다. 고대에는 연금술사들의 뛰어난 능력이 ‘필요’했고, 전지를 만들어내는 ‘진보’까지 이루게 된다. 하지만 전지는 그 시대에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피라미드의 경우도, 피라미드 건설이라는 목표를 완수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지만, 피라미드의 건설이 무의미해지자 그 기술들도 ‘필요성’을 잃어버리고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이 달에 인간을 보낸 경우도 동일한 이유이다. 

이렇듯 역사는 필요에 따라 진보하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하며, 퇴보하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가 ‘역사는 진보한다’, ‘퇴보한다’, ‘반복된다’고 정의 내린다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거나, 한 면만을 보고 확대해석한 것이다. 동일선상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는 진보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 반복될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무성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보하거나 다시 찾을 것이고, 인류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퇴보할 것이다. 

임종금(‘뿌리깊은 역사논술’저자)

경남신문 2008년 8월 18일자 기고글입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2008.02.27 19:49

슈퍼 301조 과거 글들/사전2008.02.27 19:49

슈퍼301조(Super 301조)는 지난 1988년 제정된 미국 종합무역법에 의해 신설된, 교역대상국에 대한 차별적인 보복을 가능토록한 통상법 310조 조항을 말한다.

1974년 제정된 미국 통상법 301-309조까지를 '일반 301조(Regular 301조)'로 뭉뚱그려 통칭하는 반면, 1988년 종합무역법에 의해 보복조항을 한층 강화한 310조를 '슈퍼 301조(Super 301조)'라고 부른다.

슈퍼301조는 교역상대국이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판단될 경우 보복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보복을 할 수 있게 돼있다.

슈퍼301조를 발동하려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3월말 해당국가의 무역장벽보고서(NTE)를 의회에 제출한 뒤 30일 안에 우선협상대상국(PFC)으로 지정한다. 이후 90일 안에 조사와 함께 협상을 시작하고 12-18개월 안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보복판정을 하고 판정후 30일 안에 보복에 들어간다.

조사대상에 관계없이 어떤 상품이나 분야에 대해 보복조치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보복조치는 무역협정 폐지, 관세 및 비관세장벽 부과, 양자간협정 체결 등으로 이뤄지도록 돼 있으나 대개의 경우는 보복관세를 부과한다.

이러한 슈퍼301조는 국제 분쟁해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보복조치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슈퍼301조는 한시법으로 만들어져 1989년-1990년에 적용된 뒤 폐지되었으나 클린턴 행정부는 1990년대 들어 행정명령 형식으로 슈퍼 301조를 세 번이나 발동한 적이 있다.

Posted by 임종금 JKL
2008.02.26 00:43

2.13 합의 과거 글들/사전2008.02.26 00:43

합의가 나오기까지

북한2005년 핵무장 공식선언과 2006년 10월 핵실험을 계기로 미국의 압박에 대한 벼랑끝 전술로 일관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끝까지 항전해서 결국엔 핵을 가진다'는 공식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 동아프리카 전쟁 등으로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세계 패권 미국의 권력'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 권력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복구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대안은 2가지이다.

  • 북한을 때린다.
  • 북한을 달래서 핵무기가 더는 확산되지 않도록 한다.

결국 미국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라크 문제 등 여러 대외문제가 순조롭게 풀렸다면 전자를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부시 행정부는 너무 지친 상태였다.

북한도 지쳐있기는 매 한가지였다. 온 국민의 고혈을 짜내어 겨우 만든 것이 핵무기였다. 미국은 북한의 계산대로 전쟁이 아니라 대화를 꺼내들었다. 북한은 경제를 생각할 때였다. 더는 군비증강을 할 수 없다. 그러다가는 내부적으로 체제가 붕괴된다. 다행스럽게 미국이 북한을 때릴 가능성은 극히 낮아졌다.

이제 북한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

양자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것이 바로 제5차 6자회담이었다.

합의문 전문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전문)

2007년 2월 13일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미합중국이 참석한 가운데, 2007년 2월 8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되었다.

우다웨이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부장, 김계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부상, 사사에 켄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천영우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분장, 알렉산더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그리고 크리스토퍼 힐 미합중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각 대표단의 수석대표로 동 회담에 참석하였다.


Ⅰ. 참가국들은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초기단계에서 각국이 취해야 할 조치에 관하여 진지하고 생산적인 협의를 하였다.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조기에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와 의지를 재확인하였으며, 공동성명상의 공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참가국들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동성명일 이행하기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Ⅱ. 참가국들은 초기단계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병렬적으로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궁극적인 포기를 목적으로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와의 합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 요원을 복귀토록 초청한다.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9.19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되어있는,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
  •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양자간 현안을 해결하고 전면적인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
  •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일본은 불행한 과거와 미결 관심 사안의 해결을 기반으로, 평양선언에 따라 양국관계 정상화를 취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
  • 5. 참가국들은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의 1조와 3조를 상기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와 관련, 참가국들은 초기단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긴급 에너지 지원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중유 5만톤 상당의 긴급 에너지 지원의 최초 운송은 60일 이내에 개시된다.

참가국들은 상기 초기 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되며,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데 합의하였다.

참가국들은 상기 초기 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되며,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데 합의하였다.

Ⅲ. 참가국들은 초기조치를 이행하고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목표로 다음과 같은 실무그룹(W/G)을 설치하는데 합의하였다.

  • 1. 한반도 비핵화
  • 2. 미.북 관계정상화
  • 3. 일.북 관계정상화
  • 4. 경제 및 에너지 협력
  • 5.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실무그룹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협의하고 수립한다. 실무그룹들은 각각의 작업 진전에 관해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 보고한다. 원칙적으로 한 실무그룹의 진전은 다른 실무그룹의 진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5개 실무그룹에서 만드러진 계획은 상호 조율된 방식으로 전체적으로 이행될 것이다.

참가국들은 모든 실무그룹 회의를 향후 30일이내에 개최하는데 합의하였다.

Ⅳ. 초기조치 기간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감속로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하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를 포함하는 다음단계 기간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최초 선적분인 중유 5만톤 상당의 지원을 포함한 중유 100만톤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이 제공된다.

상기 지원에 대한 세부 사항은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실무그룹의 협의와 적절한 평가를 통해 결정된다.

Ⅴ. 초기조치가 이해되는 대로 6자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확인하고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방안 모색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신속하게 개최한다.

Ⅵ. 참가국들은 상호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한 긍정적인 조치를 취하고 동북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노력을 할 것을 재확인하였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갖는다.

Ⅶ. 참가국들은 실무그룹의 보고를 청취하고 다음단계 행동에 관한 협의를 위해 제6차 6자회담을 2007년 3월 19일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합의 이후 일정

Posted by 임종금 JK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