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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7일 오후 방송.


경남에 내리는 집중호우에 대한 시민의견이었습니다.


최근 청주에는 시간당 9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이재민 500명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

우리 경남지역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연 경남에는 집중호우가 

얼마나 자주 내렸는지

경남도민일보 임종금 기자

연결해서 이야기 나눠 봅니다.


안녕하십니까?


2014년 8월 25일 창원지역 집중호우 당시 모습./경남도민일보DB




1> 경남에는 얼마나 자주 집중호우가 내렸나요?


제가 도민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니까

2000년 대 이후 57번 정도 됩니다.



2> 우리 경남에도 집중호우가 많이 오는 편인가요?


조사해 보니 2000년 이후 거의 매년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거의 매년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타 시도와 비교하기 위해 행정안전부 특별재난지역 데이터를 살펴보니 강원도 전남 경남 이 3곳이 태풍과 집중호우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자주 선포가 됐습니다. 아무래도 이 지역에 집중호우가 많이 쏟아지고 태풍 피해가 주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3> 경남에서도 주로 어떤 지역에 피해가 많았습니까?


큰 차이는 없지만 굳이 나누자면 북부내륙 지역 보다는 아무래도 해안가가 피해가 컸습니다. 하동부터 남해안을 따라 남해, 사천, 진주, 창원, 거제, 김해, 양산 등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듯 합니다. 단순 인명피해로 보면 아무래도 시골 보다는 도심지가 인명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인명피해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창원지역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4> 집중호우 중에서도 최근에는 국지성 폭우로 인한 피해가 많던데요. 경남에도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진 사례가 있나요? 


네, 얼마전 마산 양덕천 참사도 옛 마산지역 그 가운데서도 양덕천 인근 지역에 시간당 37미리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양덕천 인근 지역을 벗어나면 옛 마산지역이라도 비가 거의 안 왔습니다. 2011년 8월 7일에도 하동 악양면에 시간당 111미리의 폭우가 쏟아져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지역임에도 이재민이 109명이나 생겼습니다. 하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청양면은 34미리 밖에 안 왔습니다. 2003년 의령에서는 북부 4개 면에는 시간당 50미리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지만 남부지역엔 아예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리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이라면 골고루 내렸을 비가 이제 특정 지역에만 퍼붓다 보니 예상치 못한 폭우가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5> 이런 국지성 집중호우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최근 경남에서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피해가 조사된 게 있나요?

 

네,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지난 번 양덕천 참사도 그렇고 2015년 8월 25일 창원지역 집중호우로 8명이 사망했습니다. 특히 진동면에 시간당 111미리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이때 시내버스가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2011년 7월에도 지역별 국지성 집중호우로 8명이 사망했는데 특히 밀양에서 산사태로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009년 7월 16일 마산에 시간당 102미리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질 때도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습니다. 



6> 사실 태풍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국지성 집중호우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나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예보하기도 어렵고, 또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감’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 비는 괜찮겠다. 이 비는 위험하다. 이런 판단기준을 뛰어넘는 비가 갑자기 오기 때문에 일을 하거나 그 지역에 살아온 주민이라고 하더라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주민은 바로 대피하고 해당지역 차량운행을 통제하고 공사현장에서는 바로 철수하는 경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7> 이번에 청주에 많은 비가 내렸죠. 우리 창원지역도 시간당 90mm의 비가 오면 속수무책일 것 같은데요?


네. 창원시의 경우 배수 한계가 시간당 25미리를 기준으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25미리 이상 왔을 때를 대비해 배수장과 배수펌프 등을 총 가동하면 조금 더 버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공무원들 얘기대로라면 시간당 50미리가 넘어서면 한계가 부딪힙니다.



8> 빗물 수용한계를 너무 적게 잡은 거 아닙니까?


먼저 제 생각에 창원시가 타 도시보다 호우 방재기능이 크게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통 도시에 호우 방재시설 등을 만들 때 기준이 10년 만에 호우 최대치, 혹은 30년 만에 호우 최대치를 잡고 도시 전체적인 것을 보면서 시설을 짜기 때문에 현재의 방재시스템 상으로는 협소한 특정 지역에 갑자기 쏟아 붓는 것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9> 앞으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행정당국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네, 앞서 말한 경보시스템 구축도 필요하고 또 필요한 것이 일단 빗물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해당지역에 비가 내리면 이 빗물이 도대체 어느 경로로 얼마나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자체가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 용역을 통해 빗물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이를 토대로 저류지를 만들거나 배수로를 넓히거나 혹은 빗물을 어느 방향으로 우회하도록 할 것인지 체계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어제 창원시 몇몇 부서에 연락을 돌려봤지만 이런 얘기 자체를 애초에 들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 대책이 있겠지만 제 생각에 빗물의 이동경로부터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임종금 기자였습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지금도 40대 이상에게 1987년 태풍 ‘셀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6.29선언과 민주화, 곧이어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7월 15일과 16일에 걸쳐 한반도는 태풍 셀마의 내습을 받았다. 이로 인해 무려 345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345명의 인명피해는 해방 이후 역대 3위(1959년 사라 849명, 1972년 베티 550명)에 해당되는 큰 피해였다. 


먼저 태풍 셀마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태풍 셀마 최전성기 사진(필리핀 동쪽 해상).






태풍 셀마는 1987년 5번째 태풍으로 괌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어 필리핀 동쪽해상에 도착했을 때 중심기압 911헥토파스칼, 중심최대풍속(1분) 초속 65미터에 달하는 매우 강한 태풍으로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태풍 셀마의 압권은 바로 태풍의 크기(영향권)이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초속 15미터 이상 강풍이 부는 범위가 무려 1850킬로미터에 이른다. 한반도 4~5개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소리다. 최근 5년새 영향권 1800킬로는 고사하고 아예 1000킬로미터가 넘는 태풍이 거의 없을 정도로 셀마는 엄청난 영향권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건 필리핀 동쪽 해상에 있을 때고, 아시다시피 태풍은 올라오면서 점차 힘이 약해진다. 태풍 셀마는 전남 고흥반도 부근에 상륙하게 되는데 당시 중심기압이 970헥토파스칼, 중심최대 풍속은 40미터 정도로 상당한 힘을 자랑했지만 ‘역대급’은 아니었다. 참고로 태풍 사라나 태풍 매미 등은 중심기압 950헥토파스칼, 최대풍속 5~60미터를 곳곳에서 기록할 정도였다. 강우량도 산청 296미리를 최고로 강릉 270미리, 남해군 265미리 등 200미리 이상을 기록했다. 강우량도 적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2002년 태풍 루사(강릉에 870미리), 1991년 태풍 글래디스(부산~울산에 500미리 이상) 퍼부은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자,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사실 바람이나 강우량 모두 역대급은 아닌 태풍이다. 그런데 왜 역대급 피해를 봤던 것일까? 


기상청(당시는 중앙기상대)은 태풍 셀마가 북상할 때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고 대한해협, 특히 대마도 인근으로 빠져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 해군 기상대는 한반도 남부지역에 상륙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기상청은 대마도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고집스레 예보했고, 이로 인해 어선들이 대피하지 못했다.


7월 15일 태풍이 제주도 인근까지 올라왔지만 예상 진로는 여전히 대마도로 빠져 나갈 것이라고 고집했다. 매일경제 1987년 7월 15일 자 보도.



사실 초대형 태풍도 아닌 중형 태풍이 대마도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예보하면 당연히 경남 서부~호남지역 어민들은 ‘우리는 큰 피해 없겠네’라고 마음을 놓게 된다. 


그 결과 345명 인명 피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대피하지 않은 어선 어부들이었다. 또한 산업현장, 항구에서 넋 놓고 있다가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기상청에서는 태풍 셀마가 분명히 고흥반도를 지나 한반도 남부내륙을 통과해 동해상으로 빠져 나간 것을 알고도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들이 예상했던 진로대로 대한해협을 통과해 나갔다고 거짓 보도자료를 냈다. 약간 수정된 것이 있다면 대마도가 아니라 부산 앞바다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1987년 7월 17일. 동아일보가 태풍 셀마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재밌는 건 진로도 맨 왼쪽 기상대가 발표한 경로다. 자신의 오류를 막기 위해 (대한해협으로 빠져 나갔다는 것) 최대한 부산 앞바다에 스쳐 지나간 것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7월 17일 1면 기사에서 일본 기상청 진로도를 참조해 ‘예상진로가 틀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기상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7월 22일 민주당은 자체 조사를 통해 책임회피를 위한 자료조작 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기상청은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후 노동자 대투쟁, 대통령 선거 국면, 또 다시 이어진 태풍과 폭우로 이 사실은 어물쩍 넘어가는 듯 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1988년 1월, 기상청이 발행하는 <기상월보> 에 태풍 셀마 진로가 슬그머니 고흥반도를 지나 남부내륙을 통과한 것으로 기록된 것이 동아일보 기자에게 들켰고, 이로 인해 기상청 고위 관계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게 된다.


기상청이 애초에 태풍 예보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인명피해. 그리고 자신의 오보를 숨기기 위한 진로조작. 태풍 셀마 진로조작 사건은 기상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리고 진상을 밝혀낸 것은 동아일보의 공이 컸다. 언론 역시 공공기관의 자료를 받아쓰기만 할 게 아니라 항상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치를 다시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붉은 선이 당시 기상청 예상 경로다. 태풍 진행 경로보다 약 300킬로미터 이상 오차가 난다.




Posted by 임종금 JK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