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과거 글들/한국사 결정적 순간'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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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들/한국사 결정적 순간'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2.27 고대국가 문턱에서 좌절한 고조선(기원전 108년) (1)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완만한 발전을 거치다가 철기문화의 도입과 중국세력과의 접촉을 통하여 정치적,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일단 철기문화의 도입은 농업생산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무기로 활용되어 정복전쟁을 낳게 되었으며, 부족간의 통합도 가속화 하였다. 그럼으로써 기존에 느슨했던 정치적 연대는 철기로 인한 통합으로 보다 강화되었다. 이 때 8조 법금과 같은 기초적인 율령이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8조 법금은 후에 60여개의 조항으로 발전한다.)

부족간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왕검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정치세력이 성립되었다. 이때가 기원전 4세기 경으로 짐작된다. 또한 중국세력과의 접촉은 연나라와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고, 고조선은 고대국가로 발전한 연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통합과 중앙집권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때 기본적인 관직과 관등서열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왕검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정치세력은 지방세력을 흡수, 통합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 고조선의 동북지역에서는 고조선의 초기 발전단계를 모방한 부여라는 정치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고조선의 남쪽에서도 진국이라고 통칭되는 소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편 고조선이 성장하자 중국에서는 진나라와 한나라의 중앙집권책에 반발한 귀족들이 고조선으로 망명하게 된다. 고조선은 이들을 서부지역에 상주케하고, 중국세력과의 완충지대로 활용하려고 한다. 이들 망명세력들은 고조선에 중국의 정치·사회·경제체제를 소개하여 철기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고, 선진적인 지배시스템을 고조선에 보급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힘을 키워 왕검성을 급습함으로써 고조선의 정치권력을 빼앗았다.(위만조선의 건국) 물론 이들은 수 십년간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 머물면서 고조선화 된 상황이었다. 과거 고조선의 지배세력이나 소국들과도 큰 마찰없이 정권을 교체하였다.

위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은 곧 고대국가로 이행하기 위하여 왕위 세습 체계 확립, 관료체제의 운영, 군사제도의 정비, 수취제도의 정비 등을 시행하면서 고조선은 한층 더 진보된 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또한 대외원정을 시행하여 진번, 임둔 등을 복속하고 수천리에 달하는 세력권을 확보하였다. 또한 흉노와도 세력권이 맞닿을 정도로 힘이 강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집권화는 가속화되고, 왕권도 강화됨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왕권과 지방을 기반으로 둔 귀족세력간의 갈등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표면화된 것은 기원전 128년 예군 남려 세력이 한나라에 투항한 것이다. 한나라는 이들을 받아들여 북경 인근에 창해군이라는 군현을 설치하였다. 하지만 창해군은 126년 폐지되었던 것으로 보아 이들의 투항이 고조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미 고조선 내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표면화 된 (현재까지 남아있는)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정세는 급변한다.

한나라 무제가 집권하면서 한나라는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펼친다. 흉노를 토벌하여 서역을 개척하고, 남방을 토벌하였다. 북방을 공격하여 동호족을 몰락시킨 한나라는 기어이 고조선까지 칼날을 겨누게 된다. 한나라는 일단 섭하라는 사람을 보내 우거왕에게 '한나라에 편입하라'고 강권한다. 물론 우거왕은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 섭하라는 사람은 섭섭하게도 패수(현재 요하로 추정된)에서 자신을 배웅하던 비왕(왕이라는 칭호가 붙는 것으로 보아 왕 바로 아래의 사람일 것으로 추정된다.)'장'을 죽였다. 아마 한나라 조정은 섭하에게 '교섭이 제대로 안 되면 전쟁을 일으킬 만한 명분을 얻어라'라고 말이 맞춰져 있었을 것이다.

분노한 우거왕은 패수를 건너 요동군을 습격하였다. 한나라는 드디어 전쟁을 벌일 명분을 얻은 것이다. 한나라는 기원전 109년 가을에 군대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1차 침공이라고 할 수 있다. 육군은 양복이라는 장수의 지휘아래 5만 군대를, 수군은 좌장군 순체의 지휘아래 7천 군대를 이끌고 수륙으로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들 군대는 모두 고조선의 방어에 막히게 되었다.

한나라는 고조선의 방어가 단단하자 위산이라는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어 외교담판을 벌이게 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2차 침공을 위한 시간벌이가 아닌가 싶었다. 위산과 순체는 우거왕에게 담판을 벌이자고 요구하였고, 우거왕은 태자를 보냈다. 당시 태자가 이끌고 간 군대만 해도 1만 명이 되었다고 알려진다. 고조선의 군사력은 고대국가의 그것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막강한 군대였다. 하지만 위산과 순체는 태자에게 '무장을 해제하고 패수를 건너라'라고 지시한다. 기가 막힌 태자는 담판을 벌이지도 않고, 왕검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위산은 교섭에 실패한 대가로 참형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무리한 요구로 시간을 충분히 끌지 못한 것에 대한 한무제의 분노였을 것이다.

어쨌든 시간을 끈 한나라는 18만 대군으로 2차 침공을 강행한다. 2차 침공군은 고조선의 패수(현재 요하라고 짐작됨)방어선을 돌파하고 왕검성을 포위한다. 그러나 왕검성을 포위하였을 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초조해진 양복과 순체는 오히려 작전권을 놓고 대립하게 되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두 장군의 작전권을 조율하기 위해서 제남태수 공손수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공손수는 순체의 말만 듣고 양복을 조선과 내통했다고 하여 체포하였다. 그러자 한나라 조정에서는 공손수를 죽여버린다. 한나라 군대를 제대로 화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해가 흘러 한나라가 왕검성을 포위한 지 1년이 넘었다. 한나라 군대는 많이 지쳤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때, 왕검성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거왕에 반대하는 니계상 참, 조선상 노인 등이 우거왕을 죽이고, 왕검성을 들어 통째로 한나라 군대에 바치려고 하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니계상, 조선상 등은 바로 지방에 세력을 둔 귀족으로서 상(相)이라는 직책은 대부족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우거왕의 중앙집권책에 밀려 할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왕검성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이들은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려 하였고, 우거왕을 죽이고 고조선이 붕괴하면 중앙권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자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거왕이 죽어도 왕검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의 직책을 갖고 있는 '성기'라는 사람이 왕검성 사람들을 독려하여 끝까지 성을 지켰다. 그러나 한 번 균열이 간 왕검성을 끝까지 지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투항한 조선상 노인의 아들 '최'라는 사람과 우거왕의 아들인 '장항'이 성기를 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왕검성은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분열로 무너지고 말았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의 잔존 세력은 이후로도 1년 간 한나라 군대에 저항했으나, 결국 고조선의 주요지역은 한나라 군대에 짓밟히고 말았다.(기원전 107년) 한나라는 4군을 설치하여 고조선의 옛 영토를 관할하였다. 그러나 한나라 4군은 고조선의 모든 영토를 4등분하여 다스린 것이 아니라, 필요한 거점에만 군대와 관리들을 파견하여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던 수많은 부족·소국들에게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것은 통치비용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였다.

고조선이 붕괴되자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수많은 부족들과 소국들의 방패막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이들을 느슨하게나마 묶어주던 중앙세력이 사라졌다. 이들은 스스로 자립을 해야했다. 바야흐로 동방에 분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한 군현은 어느 특정 세력이 우위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교묘한 분열정책을 펼쳤다. 그리하여 동방은 각 부족, 소국들간의 치열한 경합으로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대 분열기는 삼국이 정립되는 4~5세기까지 이르게 된다.

고대국가의 문턱에서 무너진 고조선. 고조선의 붕괴로 동방은 대 분열기를 겪게 된다. 이는 우리의 고대사가 손쉽고 안정적인 발전의 길이 아니라, 힘겹고 불안한 경쟁을 통해서 발전하게 된다.

Posted by 임종금 JK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