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과거 글들/티무르의 테마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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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들/티무르의 테마역사'에 해당되는 글 5

  1. 2009.05.08 근대 그 배제의 역사 1
  2. 2008.12.25 우리가 보여주게 될 비겁한 역사
  3. 2008.05.24 세레모니의 역사
  4. 2008.04.29 미친 신을 미친놈이 팔아먹는 '진화'
  5. 2008.04.17 ‘신’은 미친놈이다!

 근대는 보편의 시대가 아니다. 근대는 그 문명이 납득한 존재들만을 그 영역속으로 흡수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존재는 어둠속으로 밀어넣는다. 근대는 그 배제성으로 인해 우리가 아는 수많은 보편적 가치와 보편적 원리를 유지 학고있다. 그중 하나를 알아보자.
 중세 유럽엔 나병이 만연햇다. 중세후기에는 흑사병이 유럽을 덮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에는 많은 나병환자수용소가 생겨났다.(흑사병의 경우엔 발병하면 며칠이내에 죽어버리기 때문에 수용소 조차 필요없었다.) 그러나 중세가 지나고 르네상스시대를 지나면서 유럽엔 나병환자가 거의 사라졌다. 유럽에서 갑자기 나병환자가 사라진 이유에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여기서의 논점과는 거리가 있기에 넘기도록 하겟다. 어쨌든 르네상스의 시기를 거쳐 절대왕정의 시기에 이르자 나병환자수용소는 텅 비게 되었다.
 나병이란 신의 축복을 받지못하고 악마의 저주를 받아 생긴 것이기에 나병환자수용소는 교회에서 관리하였으며 따라서 그 재산도 교회의 것이었다. 그러나 나병이 사라지게 되자 수용소는 폐쇄되게 되었으며 그 재산은 국왕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는 국왕에겐 기쁜 일이었지만 교회로선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나병환자수용소에는 사라져버린 나병환자들을 대신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존재'가 필요하게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이 수용소의 빈 병실을 채우게 되는 존재는 빈민과, 부랑자, 광인들이었다. 새로운 이들이 빈자리를 메우게 되면서 수용소는 구빈원으로 변모하게되었다. 구빈원은 말그대로 가난한 이들의 빈곤을 위한 곳으로써 빈민, 부랑자, 광인들을은 이곳에 수용되어 신성한 노동을 하고 빵을 얻을수 있었다. 이리하여 교회는 수용소의 재산을 국왕권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엇고 국왕들 또한 사회적안정을 위해 구빈원의 존재를 필요로 하였으므로 구빈원은 공식적인 기관으로 태어났다.
 절대왕정기는 황제도 제후도 사라진 정치적 공백에 국왕이 등장하였기에 기본적으로 강력한 지배자는 되지 못하였다. 국왕은 황제만큼 초월적인 존재는 될수 없었으며 제후처럼 그 지방에 대한 확실한 통치력을 확보하지도 못하였다. 국왕은 언제나 귀족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했으며 따라서 일반 평민에 대해 강한 지배력을 확보할 겨를이 없었다.  이는 절대왕정기 내내 국왕권의 딜레마이기도 했다. 결국 국왕은 대중에 대한 강력한 통제대신 반란의 불씨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통치하게되었고 이에 따라 반란의 불씨가 될 불온계층은 제거되어져야했다. 그러나 반란이 공식화되지 않는 이상 그들을 무턱대고 죽이거나 감금할 수는 없었다. 결국 국왕은 이들을 제거할 효과적인 수단으로 구빈원을 선택했다. 구빈원의 설립과 함께 사회적 불만계층일 수밖에 없던 빈민,부랑자들은 국왕의 은혜 덕분에 구빈원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감옥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교회는 이를 종교적으로 찬양함으로써 그 행위를 정당화시켜주었다. 권력과 종교의 야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제도는 절대왕정기 말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렇게 불온계층은 일반대중과 분리되었다. 우리가 역사발전의 형식에서 메뉴팩쳐라고 부르는 공장제수공업은 대부분 구빈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적 의미로 포장되었을 뿐인 사실상의 감금과 강제노동은 대중들에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근대 시민혁명은 이러한 감금의 장소인 구빈원을 폐쇄시켰다. 프랑스혁명 때에는 이미 없어진 감금의 장소인 바스티유가 공격당했다. 그 당시 바스티유는 감금의 장소로 사용되지 않았다. 구빈원으로써는 물론이요 감옥으로써조 사실상 폐쇄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인식속에 감금의 장소인 구빈원이었던 바스티유는 공격당하였다. 
 그리고 더이상 유럽의 권력자들은 구빈원을 사용할수가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통해 폭발해나오는 대중의 에너지와 그 발생점을 분리해야만 하였다. 19세기라는 혁명의 시대는 권력이 대중을 지배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도록 부추겼다. 더이상 종교적 포장으로도 감금을 통한 배제는 소용없었다. 대중들의 분노는 언제나 권력자들을 두렵게 했으며 권력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또다른 방법의 분리법을 개발해내었다.
 새로운 분리방법은 세분화와 분업을 통한 분리였다. 불온계층은 광인, 부랑자, 빈민, 범죄자등으로 세분 되었으며 그 처우도 정도에 따라 세분화 되었다. 불온계층자체를 분화시켜버린 것이다. 범죄자는 중범죄자와 경범죄자로 나쥐었으며, 빈민은 빈곤 정도에 따라 지원(?)정도가 달라졌다. 부랑자들은 정착이 요구되었고, 정신이상자들은 정신병원 속으로 사라졌다. 감옥은 범죄자만이 가게되는 곳으로 범죄자는 빈곤, 정신이상자, 부랑자들과 다른존재들이 었다. 마찬가지고 빈민은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아야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들에 대한 대처는 종류별로 다른 것들이었다. 이들 불온집단에 대한 처우의 차별화는 이들 집단을 갈라놓아 그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결정적으로 이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는 존재와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존재를 분리시켰다. 예컨데 재판관이 사형집행인이자 간수이기도 했던 시대는 갔다. 범죄는 다른 불온함과 불리되었듯이 범죄를 처리하는 조직들도 분리가 되었다.  재판관은 재판만을 간수는 감옥을 지키는 일만을, 사형집행인은 살인만을 그리고 경찰은 범죄자의 체포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업화는 그나마 쌓여있던 분노의 표출대상을 흐뜨려주었다.
 특히 재판의 경우엔 이를 더욱 확연하게 보여주는 현상이 일어났다. 과거엔 고소자와 피고소자 외엔 재판관만이 있었다. 실제 형벌은 다른이들이 맡게되었지만 여전히 재판관은 이목의 중심이었다. 형벌을 받게 된자는 언제나 1차적으로 재판관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복잡하고 긴 재판절차와 변호사 검찰 배심원들이 생겨났다. 이는 재판에 대한 불만을 재판관이 아니라 다른 참석자들, 즉 검찰, 변호사, 배심원 심지어는 청중과 재판절차에게로까지 그 불만을 분배시켜주었다. 이렇게 재판은 범죄자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흐뜨리면서 그를 사회로부터 분리시킬지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다. 
 빈민이나 정신이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그의 운명을 쥔 빈곤의 조사관과 실제로 구호를 베푸는(?) 일을 맡은 공무원은 분리되었다.  정신과의사가 정신을 감정하지만 정신병원수용소에 그를 가두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정신병동의 경비원과 간호원이 하지 않는가?
 반발이 생겨도 표출할 대상을 흐뜨리고 혹여 표출되더라도 조직자체가 아니라 몇몇 개인을 상대로 분출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들이 19세기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장치들의 힘을 통해 반발을 분산시키고 무력화함으로써 권력에 적대적인 존재들을 사회로부터 분리, 배제하는것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배제의 힘 덕택(?)에 우리는 무법도 사라지고(?), 빈곤도 더이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고있는것이 아닌가? 
 
Posted by 티무르
 오늘 참으로 창피하고 비참한 뉴스를 보았다.  지금의 이명박대통령이 취임초 진행하려 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국민의 큰 반대에 부딪혔다. 당연한 일이었다. 황당무개한 건설사업으로 경기를 살리겠다니 국민들은 반대를 넘어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통령은 한바도 대운하 졔획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얼마뒤 한 연구원의 양심선언언이 있었다. 이대통령은 겉으로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척하면서 뒤로는 국민을 속이고 대운하계획을 비밀리에 진행 시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심을 지키기 위해 밀실대운하계획을 폭로하였던 연구원은 오늘 정직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나온 뉴스였다. 다음날이면 이미 언론에선 사라지고 며칠이 지나면 아고라에서 조차사라질 뉴스다. 글을 쓰는 필자의 기억에서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조만간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충격과 비참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정직이라니 결국은 일하러 나오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해고의 사전절차와도 같은 것이다. 그의 양심선언의 결과는 해고였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또한 교훈을 준다. 지금 우리도 역사속을 살아가고 있으며 후손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통해 많은것을 보여주고 교훈을 주게될 것이다. 하지만 수치스럽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위대한 모습이 아니라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될것 같다. 김태희 연구원의 폭로는 아무리 권력자라도 국민을 함부로 기만할 수 없으며 만일 그러하였다간 뜨거운 맞을 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사실상의 해고를 당하는 모습에선 비열한 권력이 국민의 양심에 대해 휘두르는 몽둥이를 우리는 보게 되었다.
 후손들은 이러한 지금의 우리를 보면서 두가지를 깨달을 것이다. 용기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회는 조금씩 개선된다는 것. 그러나 그 일에 앞장섰던 용사들은 권력의 몽둥이를 맞는 다는 것이다. 둘중 어느것을 배우느냐는 후손들의 몫이지만 분명한건 우리들은 멎진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용기란 그저 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낼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사나이가 용기를 내어 자신이 사는 사회를 위해 나섰다. 군력이 국민을 기만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권력자의 비열함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의 용기조차 지켜내지 못한채 그가 보복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것은 우리 시민들의 수치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울수 있는 자들이 시민이다.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지 말아야하는 자들은 노예들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가 시민이라고 자칭하면서도 시민의 권리를 지키려나선 한 사나이의 용기조차 지켜주지 못했다. 우리가 이렇게 비겁하였던가? 우린 시민이 아니라 그저 권력자들의 노예였던 것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저 노여였을 뿐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명박씨의 독재정치의 시도와 폭거에 대항해 촛불을 들었었겠는가. 그런 우리는 김희태연구원 용기를 지켜줘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그런것도 못하겠는가!
Posted by 티무르
 

 오늘날 우리는 언제나 수많은 형태의 수많은 세레모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영화제, 체전. 축제, 결혼식, 취임식, 퇴임식, 졸업식, 입학식, 준공식, 승전축하, 시상식, 기념일행사, 토론회, 발표회, 박람회, 판촉행사 등등(헉헉 거참 많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세레모니에 우리는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어째서 세레모니의 홍수에 휩쓸리게 되었는가. 이런 세레모니는 왜 일어나는가. 이 글에서는 세레모니의 역사가 주제이다.


 세레모니의 목적은 그 주최자가 자신이 원하는 메세지를 참가자 및 관람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충무공탄신일에 일어나는 행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순신제독을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그가 승전을 하였던 곳에서는 그 해전을 재현한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이러한 행사를 보도하고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내보낸다. 이러한 세레모니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세레모니의 주최자는 국가이고, 국가는 개인의 힘으로는 동원할 수 없는 인원과 물자를 소모해가면서 이러한 행사를 벌인다. 이순신제독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서? 그렇지 않다. 이순신제독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국가가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국가가 바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해라”는 메시지이다. 그러기 위해 이순신제독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로 그려지고 한껏 추앙받는다. 실제의 이순신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는 상관없다. 국가는 이러한 영웅상을 만들고는 국민에게 그 영웅을 닮을 것을 세레모니를 통해 은연중에 강요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아니 전근대의 역사 전체에서 이러한 세레모니를 주체하는 것은 주로 정치권력이었다. 참가자와 관람자에게 메시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도 권력이요, 이를 주체할만한 부와 힘을 가진 것도 당시에는 정치권력이었다. 이러한 정치권력이 세레모니를 통해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했던 메시지는 자신들의 권위였다. 관객들은 주로 피지배자들이었고, 따라서 권력이 세레모니를 통해 피지배층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자신들의 권위를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오늘날과는 달리 전근대에는 정치권력이 세레모니를 주체할 때 신성과 연계하였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 또한 탄생한 것이다. 신성만으로는 신이 탄생하지 못한다. 신성에 대해 논한 글을 썼다. 거기에선 나는 신성이 광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하였다. 광기는 일반인과는 다른 무엇이기에 외경을 받아 신성이 되지만 단순히 광기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성이 신이 되려면 세레모니가 필요하다. 신은 인간, 정확히는 대중의 인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신성의 권위를 각인 시켜야 신이 될 수 있다. 대중에서 신성의 권위를 각인시키는 수단, 그것이 바로 종교적 제전과 의례이다. 대규모종교행사를 통해 대중에게 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신앙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종교행사가 생겨났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단순한 광기나 신성으로 끝날 것이 세레모니라는 방식으로 권력과 결합했기 때문에 신앙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전근대의 권력은 어째서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 종교적 세레모니를 벌였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주로고대에 나타나는 제정일체형 사회에서는 정치권력 그자체가 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문명에서는 최고통치자인 파라오가 신의 아들이었으며, 중국은 고대부터 천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최고통치자는 하늘의 가호를 받는 존재였다. (참고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천명은 진한통일제국 이후의 개념으로 그이전의 천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 이전에는 천명을 내리는 하늘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자아가 있는 존재였다.) 수메르의 전설적인 영웅 길가메시대왕은 반신이었고. 그리스의 폴리스를 건국한 영웅들은 대부분 신의 혈통을 물려받은 존재들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고구려 왕실은 천신의 후손으로 결코 전복시킬 수 없는 신성한 존재들이었다. 권력은 자신들이 이렇게 신성한 존재임을 피지배층이 잊어버리지 않고 매년 날을 정해(?) 재인식 시키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신께 제를 지내고 축제를 열었던 것이다.


 고대 이후 제정이 어느 정도 분리된 사회가 나타났으나 정치권력은 통치를 여전히 피지배층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수많은 왕공들이 유력한 성직자들을 자신의 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돈을 썼으며, 유럽에서는 중세후기에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기존의 정신세계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마녀사냥은 통치자들에 대한 불만을 마녀라는 희생양을 이용해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며 종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사실 오늘날에도 마녀사냥의 연장형태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많은 나라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받으면 상대를 빨갱이나 테러리스트로 몰아붙이면서 결과가 뻔한 법정에 세우는 현대판 마녀사냥을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마녀사냥에서 가장 클라이막스가 되는 것을 화형식이다. 불에 태워 죽이면서 그것을 보는 군중에게 카타르시스와 두려움을 동시에 준다. 그럼으로써 피지배층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한 외경심을 재각인시켜 그들이 반기를 드는 것을 막는다. 전근대의 형벌이 잔혹하고 공개적인 세레모니였던 것 또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를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속해서 복종하게 하려면 권력은 피지배층을 조금씩은 만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러한 세레모니가 개선식이라든지 축제였던 것이다. 즐기도록 함으로써 한편의 스트레스를 풀게 하는 것이다. 세레모니는 당근과 채찍의 양면적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세레모니는 계속 되고 있다. 더욱 거대해지고 많아졌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사원들을 독려하기위해 연말축하파티를 하며 연말보너스를 주는 것도 세레모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회사가 바라는 것은 열심히 일할 것이지만 말이다. 나치독일이 거대한 규모의 퍼레이드를 이용한 것, 미국이 전사자들을 화려한 장례의식을 통해 전국민의 구경거리로 만들면서 국립묘지에 몯는 것 모두가 현대적인 세레모니이다. 토론회 같은 세레모니는 애당초 토론회를 통해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 정해져 있기에 세레모니이다. 단순히 사람을 모아 대화를 나눈다는 의식을 거행하고 그를 통해 각계의 여론을 수렴했다는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뻔한 스토리임에도 그러한 세레모니를 거쳤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주최자가 내는 최후결론에 대해 반박하기가 어렵다. 세레모니는 거부할 수 없는 메시지의 각인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권력은 오랫동안 이를 이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피지배층에게 강요해왔으며 이러한 형태의 통치기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독자제현이여 당신은 어떠한 행사에 빠져 자신의 자아를 잃고, 주최자의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는가?


Posted by 임종금 JKL
 

 우리는 지난 글에서 신성은 (이성으로 제단 할 수 없는)광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광기를 지닌 존재가 초기의 종교를 성립시켰다는 것도 알았다. 이번 글에서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신성을 지닌 존재의 변화이다. 신성함의 주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알아보자.


 고대에는 광인(광기를 가진 자)과 신성이 동일시되었다. 즉 인간(특히 사제들)과 신성이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를 보면 초기 인간과 신이 분리 되지 않았던 모습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최초로 인류를 통일한 가장 위대한 제왕인 길가메시는 반은 인간이지만 반은 신이다. 그의 시종인 엔키두 역시 신에 의해 창조된 신성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이면서 신인 존재들이다. 이런 현상은 거의 비슷한 시기인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서는 더욱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사제집단의 우두머리이자 정치적 지배자인 파라오는 신의 아들로써 신이 이 세상에 화신으로써 강림한 존재이다. 좀더 세월이 흘러 성립된 그리스의 신화에도 수많은 반신이 등장하지 않는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건국신화 역시 천신의 손자가 이 나라를 건국한다. 이는 고대 제정일치의 사회에서 지배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에게 신성을 부여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기원후가 되어서도 나타난다.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있는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 역시 자신을 신성시하기 위해 스스로 신의 아들을 자칭하지 않았는가? 그의 지지자들은 그에게 더욱 강한 신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가 죽은 뒤 안티오크에서의 회의를 통해 그를 신으로 격상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은 신의 사도로 자처한다. 이 모든 것이 권위와 관련된 신성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중세가 되면서 적어도 우리가 문명이라 불리는 세계에서는 신성과 인간은 분리되었다. 기독교나 이슬람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신의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성자라는 고대의 신성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흔적이 다소는 남아 있었지만 교리상으로는 분리되었다. 힌두교도 마찬가지였다. 불교는 종교라기 보단 사상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그것이 종교화된 것은 근대이후 기독교의 공격에 의한 반작용의 결과이다. 유학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른바 구세계의 문명지역의 종교들은 중세 이후 신성과 인간이 분리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나의 강력하고도 거대한 신성을 상정하고는 그것을 숭배하는 형태를 만들어 냈으며 사제계급은 인간과 신 사이에서 중개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제에게 신격이 부여되던 시대는 가고 사제는 신을 받드는 존재로 변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중개업자가 되었다. 중개업을 통해 이익을 버는, 신을 파는 상인 집단이 되었다. 이 상인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중개업을 자신들이 독점을 해야했다. 중세유럽의 카톨릭교단이 사제가 아닌 일반인이 신을 만나면 이단으로 처벌하였던 이유가 무엇인가? 기존의 사제집단에 반기를 들었던 무하마드가 “신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를 외쳤던 이유는 또 무엇일까?


 어찌되었건 근대가 도래 하자 종교의 시대는 갔고 신을 파는 사업도 예전만큼 철밥통일 수는 없게 되었다. 신을 파는 사업이 힘들어지자 사제들은 또 다시 고대의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교주가 자신을 신성시하는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고, 심지어 보편종교(?)를 자처하는 교회나 사원의 목사나 승려들조차 자신을 스스로 신성시 하며 괴이한 행각을 일삼는다. 순XX교회의 목사 조모씨 나 금X교회의 목사 김모씨의 행각을 보라. 전에는 기를 나누어준다며 여신도에게 정력을 나누어준 승려도 이슈가 되었다. 섹스교주로 유명한 정모씨도 있다. 한 목사님께서는 여신도랑 자다가 신도의 남편이 오자 아파트에 매달려 계시다가 추락사하시기도 했다.(공중부양의 신통력으로 안전하게 착지하시면 될 것을...) 신성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신앙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정치권력에서도 다시 나타났다. 대표적 예가 일본왕가의 건국신화이다.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자손이 최초의 일본국왕으로 백대가 넘는 세월에도 신의 가호로 인해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왕가의 신화는 전근대가 아니라 메이지시대에 정치권력의 의도에 의해 성립된 근대의 산물이다. 일본의 메이지국왕은 천년이 넘는 막부시대로 인해 추락되어 있던 왕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이러한 원시적 형태를 가진 신화를 근대에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신성의 주체의 변화를 알아보았다 고대에는 광인이 사제가 되고 사제가 신성을 지녔으나. 중세가 되면서 신성과 사제는 분리 되었다. 그러나 근대가 되면서 마치 고대로 회귀라도 하듯 사제와 신성이 다시 융합되는 기미가 보인다. 물론 고대와 근대의 신성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성이 보기에는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신성의 이러한 변동은 우리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인간이 무엇을 숭배하느냐 인 것이다. 고대에는 무서운 인간을 외경한 것이며 중세에는 뜬구름을 숭배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무엇을 숭배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헛소리하는 인간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osted by 임종금 JKL
 

우리는 미친 사람을 경멸한다.(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신성함’은 광기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광기는 광의의 광기이다. 의학적으로 분류된 정신질환도 있으며,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신경성질환인 간질 같은 것도 광기에 속하며, 우리가 괴짜, 엽기 등으로 취급하는 특이한 취향들도 광기이다. 어찌 되었건 일반적 이성과 통념의 통제 밖에 있는 모든 것이 광기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광기를 경멸하는 것과는 달리 원시시대의 인류는 광기를 두려워했다. 간질환자가 갑자기 발작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시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기이한 소리를 지르면서 거품과 함께 떠는 모습은 지식이 적던 시대의 사람들에겐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엔 기이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경외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경외의 대상들은 광기에서 나온 것으로 이성적으로는 판단하거나 설명할 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설명이 힘든 경외의 대상들이 최초의 신이 되고 인류의 초기종교를 성립하게 한다.


 이렇듯 인류에게 첫 숭배의 대상은 광기였다. 광기를 지닌 인간에겐 신성함이 있다고 믿어졌고, 신은 광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대그리스 델포이신탁의 무녀들은 신전 아래에서 올라오는 환각성이 있는 가스를 마시고 환각에 취한채로 아폴론신의 예언을 전했고, 잉카나 아즈텍 등 아메리카에 있던 문명들의 제사장들은 마약을 복용한 뒤 의식을 집행했다. 또한 오늘날에도 부두교신자들이 신성에 취하거나 한국의 무당들이 다중인격을 통해 신성을 드러내는 것에서도 신성의 정체는 광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서양의 종교 중에서도 부들부들 떠는 퀘이커교가 있지 않는가.


 신앙이 공식석상에서 뒤로 밀려난 현대사회의 신앙들 중에도 광기의 모습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수십만 명을 죽게한 지진해일을 종교적의미로 찬양한 한 성직자나, 자신의 종교를 정의로 내세우며 타종교를 사이비종교로 비난한 한 강대국의 대통령이 그 예이다. 그 밖에도 “목사는 자신이 교회 신도에 대해 한명의 교주가 되어야한다”라는 한 성직자의 말은 더욱 적나라하다. 이보단 더 광기 어린 말이 어디있는가? 폭력적이며 무시무시한 광기어린 언행을 통해서 지도자들은 자신의 위상을 유지한다. 여기서 신도들은 그러한 폭력적이며 공포를 조장하는 지도자들의 광적 언행을 보며 외경심을 가지는 동시에 열광한다. 그럼으로써 그 집단이 유지된다. 전근대에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던 시기에는 이러한 광기의 언행이 그 집단의 유지하는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제공했다.아니 그건 현대에도마찬가지 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을 보라. 아니 더 가까운 일본의 메이지천황을 보라! 그 미치광이들이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전근대의 종교사회나 현대의 사회나 겉모양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 몰라도 양측 다 광기가 내제 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할 것이 있다. 근대사회는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는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유지하려면 이성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광기 아래서는 그럴 수 없다. 모순이 생기고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도 근대가 되면서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가 도래한다. 이성은 광기를 배척한다. 근대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제공했던 위대한 인문학자들은 비이성의 영역을 공격하였다. 광기도 예외는 아니었다.(이 부분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잘 나와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종교라는 이름의 광기와는 타협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배척해 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종교 또한 타협하고 싶어 타협한 것이 아니라 근대가 되었어도 종교세력(여기선 기독교)의 힘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이다. 근대가 되어도 종교의 막강한 힘은 뿌리뽑히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사실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 있어서 종교에 의해 비호 받고 있는 광기는 타협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이다.


 한편 종교와 관련이 없는 광기의 대상은 근대사회의 죠류에 대항할만한 힘이 없었기에 무너졌다. 근대사회는 이들을 처우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광기를 가진 자들을 감옥에 감금하였으나 20세기에 와서는 (보통은 언덕위의 하얀 집이라는 말로 비꼬는)정신병원에 감금하게 되었다. 


 고대에 외경의 대상이던 광기는 근대 이성주의 사회에 들어와서는 배척받아 사라졌다. 그러나 신앙의 이름으로 광기는 다시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 신은 본래부터 미친 존재였고, 인간은 그 옛날부터 그 광기에 떨어왔다. 우리는 미친 존재와 그를 외경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Posted by 티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