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과거 글들/시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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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영문 취임사 곳곳 오타 `눈살'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명박 대통령 영문 취임사에서 몇몇 오류가 발견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28일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에 게시된 대통령 영문 취임사를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곳곳에서 영어 단어의 철자 오류가 발견됐다.


연설문에서 발견된 오류는 `begining(시작하는 beginning)' `keeing(지키는 keeping)' `moderniziation(현대화 modernization)' `adminstration(정부 administration)' `hinderance(장애물 hindrance)' 등이다.


또 문장의 첫 단어를 소문자로 시작하거나 명사를 나열하면서 마지막에 나열한 단어 앞에 `and(그리고)' 대신 코머(,)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기초적인 문법 실수도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our country's(우리 나라의)'를 표기하면서 소유격 부호(') 여러 개를 중복해 `our country'''''''s'라고 표기하는 등 연설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듯한 흔적도 눈에 띄었다.

이 같은 오류는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의 맞춤법 검색 기능을 활용해도 쉽게 발견되는 것으로 대통령 취임사조차 꼼꼼하게 점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영어교육학과의 한 교수는 "큰 오류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홈페이지인데 부끄러운일"이라며 "영어 몰입 교육 등 영어 교육 강화에 앞서 기본적인 것부터 점검할 일"이라고 말했다.


sewonlee@yna.co.kr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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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28일)자 따끈따끈한 조선일보 만평입니다.

조선일보는 왜 남주홍 내정자가 사퇴했는지 보다는 이것으로 김정일이 큰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 더 눈에 잘 보이는가 봅니다.

저들의 한계일까요? 아니면 천지만물을 꿰뚫는 신통력으로 '본질 중에 본질'을 본 것일까요?

그리고 어쩌자는 걸까요? 다시 남주홍 같은 사람을 불러오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아쉬움의 표현일까요?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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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2005년 1월 16일)부터 또다른 전쟁의 서막이 펼쳐진다. 바로 개정된 저작권법의 시행으로 소비자와 소위 ‘전송권’을 가진 기업과의 전쟁이 그것이다.

개정된 저작권법은 저작인접권자인 법인이나 개인이 전송권을 가지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여기서 전송권이란 전송권자가 유무선의 방법을 통하여 저작물을 송신하거나 다른 이가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전 저작권법에서는 이 전송권이 창작자에 제한되어 있었으나 이제 개정된 저작권법은 위에서 말한 대로 이 전송권을 저작인접권자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이나, 음악파일에 대한 전송권 침해에 관하여 창작자 개인이 단속하고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직접 나서서 이것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업이 소비자를 통제하고 단속하는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기업에게 전송권까지 주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기업은 자본과 조직을 거느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저작물의 창작과정에서 단 1%의 창작과정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들은 창작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다.

이런 기업들에게 배포권과 복제권 외에 전송권까지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의 전송권에 대한 단속도 그들의 이윤에 맞는 인기 음반이나 동영상에만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저작권법에 있는 전송권은 소비자가 제 값을 주고 산 음반이나 동영상 조차도 개인적으로 친구에게 보내주는 순간, 개인 소유의 사이트에 올리는 순간 전송권 침해에 해당된다.

즉, 소비자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소유하게 된 개인의 소유물조차도 개인의 자유의사대로 처분할 수 없는 반자본주의적인 조항인 것이다. 이런 전송권은 분명 철회되어야 마땅한 권리이다.

이제 전송권을 화두로 우리 사회에서 저작권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의 속에서 저작권법의 기본전제인 ‘저작물은 창작자의 순수한 창작’ 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지구상의 수많은 정보는 과거 인류의 수천년 역사를 통해서 축적된 유산이다. 그런 만큼 정보는 사회적이고 공공재적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정보가 어떤 개인(집단)이 한 순간에 무에서 유로 만들어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이것을 과연 그 정보 저작자에게 그 전권을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작권법의 바탕에 깔려있는 ‘어떤 저작물(정보)은 창작자의 순수한 작품이다. 고로 그 창작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은 분명 반역사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저작권법 논의가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 좀더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경남 도민일보 투고글-2005년 1월 10일)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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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뜯어먹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몇몇 언론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주가가 올랐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몇몇 언론은 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느껴지도록 기사를 썼다.

물론 주가가 오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이 '근원'이 아니다. 어제 오늘 사이에 전 세계 주가지수가 일제히 올랐다. 그럼 전 세계가 이명박 정권의 취임에 '기대'를 갖고 주가가 올랐는가?

그렇지만 이들 언론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 이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은 바로 '세계 경제메 영향을 미치는'일처럼 생각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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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이명박 대통령 덕분이다?



그렇게 생각한 신문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1. 중앙일보: E1면 <MB 주가, 뛰다> 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떨어졌는데, 이명박 대통령 취임하자 올랐다.'라고 풀뜯어먹기 시작. 근데 기사 말미에는 '외부요인'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슬쩍 얹어 놓았다.

2. 세계일보: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5일 코스피 지수가 크게 올랐다"라고 주장. "이 대통령이 올해 안에 임기 내 종합주가지수 3000, 임기내 5000 포인트 달성을 강조했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라고 하여 이것이 마치 '이명박 임기 내에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환상을 독자에게 강조하려 풀을 뜯어먹었다.

이 밖에 각종 대형언론과 경제지에서도 제목을 '이명박 취임, 주가 상승'을 동일선에 놓아, 독자들에게 마치 '이명박이 대통령 되니까 주가가 오르네'라고 생각되도록 하였다. 다수의 독자들이 제목만 훑고 지나간다는 것을 마치 알기나 하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억지로 칭찬을 해주는 수많은 언론을 거느리고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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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의 최종지지율이 27.9%로 나왔습니다.

임기말 대통령 치고는 역대 가장 높은 수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황에 따라 큰 폭의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취임 초기에는 다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80%의 높은 지지율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계속 지지율이 하락하여 1년도 못 되어 30% 인근에서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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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하여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반등하였으며, 총선 전후에는 50%까지 회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보수언론의 총공세와 각종 개혁조치의 미비로 지지율은 다시 완만하게 하락하여 2006년 말에는 10% 초중반에 이르게 됩니다.

2007년 한미 FTA 협정의 타결로 40%의 지지율을 잠시 회복했으며, 10월에 있은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35% 내외로 지지율이 재상승하였습니다.

한편 지지정당별 노무현 대통령 국정수행지지도는 한나라당이 13%, 통합민주당이 55%, 민주노동당이 48%, 창조한국당이 93%를 나타내었고, 지지정당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36%의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리얼미터에서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였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형보수언론의 총공세와 한나라당, 기득권세력의 총공세를 맞아 국민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과정에서도 나름대로 선전한 지지율이라고 생각됩니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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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충격적인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 신문 노현웅 기자가 삼성병원에서 삼성특검관련 자료들을 은닉하는 장면을 취재한 것입니다. 삼성은 특검에 성실하게 대응할 의사가 없는가 봅니다. 아래는 한겨레 노현웅 기자의 취재담입니다.

관련주소는 http://blog.hani.co.kr/goloke/969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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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벽 12시20분께 야근 중인 편집국에 전화벨이 울린다.

택시기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아무개씨가 양복을 차려 입은 손님을 삼성서울병원에 내려주며 들었다는 내용을 제보했다. "'출근 복장으로 지금 회사에 오라' '특검에서 압수수색을 나올 수 있으니 자료 다 치워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충격적인 내용.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삼성에서 조직적으로 자료를 지우고 있다'는 풍문이 현장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기회였다. 곧바로 회사 차를 타고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차량에 찍혀있는 <한겨레> 로고가 노출될 우려가 있어 삼성의료원 옆 큰길에 차를 세우고, 기사 형님께 차를 먼 곳으로 치우라고 말씀드리고는 추운 밤길을 걸었다.

'이 웅장한 삼성서울병원 어디에선가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는 확률이 높다' '어디쯤에 행정, 정보 사무실이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본관에 들어서자  긴급 소집에 늦은 것으로 보이는 양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은 낮은 목소리를 소곤거리며 본관 2층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불이 꺼져있는 한산한 병원에 오직 본관2층만은 수십 명의 직원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병원 안내판을 찾아보니 행정지원사무실과 정보지원실이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빙고'

늦은 밤이라 인적이 드문 병원을 헤집고 다닐 수는 없었다. 드문드문 배치된 보안 직원들은 그 시간까지도 무전기를 들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불이 밝혀 있는 응급실 근처로 향했다. 본관 2층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현관이 그 옆에 있었다. 응급실에 온 환자 가족인 것 처럼 행세하며 담배를 피웠다. 가끔 응급실로 돌리는 걱정어린 시선은 필수였다.

직원들은 응급실 옆 현관을 통해 수십차례 들락날락 거리며 짐을 옮겼다. 현관 옆에 주차된 차량에 서류더미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4~5대 차량 뒷좌석, 트렁크에 가득할 정도의 분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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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수십 명의 직원과 보안 직원까지, 따돌려야 할 시선이 너무 많았다. 응급실 건너편 야산에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몸을 숨겼다. 하지만 '똑딱이' 카메라로는 현장을 줌으로 땡기는 일도, 어두운 현장을 담아내는 일도 버거웠다.

다시 현관 앞으로 이동했다. 마침 손을 멈춘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짜증이 날 법도 할 일이었다. "집에 방금 들어갔다가 나왔다" "짜증난다" 등의 대화가 시작되더니,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원무과는 안해도 된단다" 전화를 받았던 이는 화색을 띄며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들에게 이날의 작업은 짜증나지만 처리해야 할 회사 일, '야근 작업'에 불과했다.

법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공부는 안했지만, 법질서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깊은 밤 삼성서울병원은 탈법, 불법의 현장이었다. '증거인멸'이라는 형사상의 범죄.

누군가 "여차하면 이 차 끌고 검찰청으로 갈까보다"라는 말을 웃으며 던졌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 '작업'의 의미를. 하지만 그들 누구도 그 '작업' 지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삼성'이라는 이름의 공범이 아니었을까?

새벽 4시30분께 후배 기자와 교대하고 자취방에 몸을 뉘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의 카피라이트는 결국 '삼성으로 하나된 패밀리'의 반어법이 아닐까? 인수위 식으로 '훼미리'라고 해야하나? 혼자 피식거리다 보니 잠이 쏟아진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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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더 좋은 치료를 받기 원한다고 해서 이를 도덕적 해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정부가 건강보험의 포괄수가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매일경제의 설명에 따르면 병원과 환자들의 도적적 해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다.

포괄수가제란 진료의 정도에 관계없이 각각의 질병마다 표준 진료비를 정해두고 이를 부담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맹장수술의 경우 배를 얼마나 꿰멨는지 또는 얼마나 오래 입원했는지 등에 관계없이 표준진료비가 정해져 있고 건강보험공단은 이 표준진료비만큼만 부담하게 된다. 이 경우 병원에서도 더 열심히 치료한다고 해서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이상의 진료를 기피하게 되고 환자 역시 비용 부담이 일부 줄어들게 된다. 항생제 사용도 줄어들게 되고 의사가 진료비를 덤터기 씌우는 과잉 진료도 막을 수 있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주장이다.

지금까지는 진찰료와 행위료, 검사비, 재료비, 입원비 등으로 따로따로 계산해서 합산하는 행위별 수가제 방식이지만 포괄수가제로 바뀌면 맹장수술과 백내장 수술, 제왕절개 등에 각각 가격이 매겨지고 모든 진료행위가 표준화된다. 문제는 이런 표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다. 또한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다. 이런 획일적인 규제로는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의료 서비스의 양에 관계 없이 미리 정해진 대로 표준화된 진료비만을 병원에 지급하는 포괄수가제나 환자당 일정액을 주는 인두제 등 다양한 지불제도를 구상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이 새지 않도록 힘쓸 방침"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보건복지부는 연간 병원을 1천회 이상 방문한 사례를 들어 건강보험 재정이 불필요하게 새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 아닌가. 일부 언론에서는 독감 예방주사를 여러차례 맞으러 오는 노인들의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지나친 복지 혜택이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는 주장이다.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것은 그야말로 치졸한 발상이다. 도대체 누가 세금을 축내기 위해 일부러 병원에 드러눕는단 말인가. 설령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할지언정 병원에서 내쫓기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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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수가제도를 다양화하는 배경으로 "질병구조가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현실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가벼운 질환에 대해 보장을 하지 않거나 보장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가벼운 질환에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저소득 계층을 배려하지 않는 발상이기도 하다.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화도 시급한 과제지만 무작정 진료비를 절감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은 될 수 없다. 고령화에 따라 의료비 지출 증가와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 정부의 보전과 세수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필연적이다. 저소득 계층에게는 오히려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진료비를 부담하는 것보다 유리할 수 있다. 그런데 매일경제를 비롯해 보수·경제지들은 병원과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으면서 포괄적 수가제나 인두제 등을 대안으로 들고 나온다. 가벼운 질병은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건강보험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매일경제 등의 주장은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이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간담회에서 했던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사장은 이 자리에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본인 부담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러면 건강보험 재정도 건전화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장은 건강보험을 축소하고 본인 부담을 늘리는 대신 민영 의료보험을 활성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와 매일경제 등은 간과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일부 병원과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기존의 건강보험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령화와 양극화에 있다. 항생제의 남용이나 과잉 진료도 막아야겠지만 근본적으로 급증하는 의료비를 사회적으로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 범위를 넓히는 것 못지 않게 의료 사각 지대를 축소하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우리나라 공공보험의 보장성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나라들 평균인 70%대에 훨씬 못 미치는 50%대에 머물러 있고, 본인부담률도 40%대에 육박해 OECD 나라들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미디어 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760

->이런 기사들이 건강보험 민영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위한 '사전작업용'기사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매일경제는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런 글들을 쓸까요?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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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5. 15:08

외눈박이의 「역사」 과거 글들/시사2008. 2. 25. 15:08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에서도 역사책을 있는 대로 사주었고, 필자는 있는 대로 보았고, 학교에서도 있는 대로 봐주었다. 필자는 무주공산을 내딛는 천리마와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필자의 ‘역사공부’에는 몇 가지 성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첫째, 영토에 관한 ‘애정’이었다. 둘째, 군사력에 관한 ‘집착’이었다.


역사책을 보면 항상 지도가 나온다. 특히 설명이 복잡한 고대사의 경우,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 지도에서 표시된 영역이나 세력권은 비슷했다. 그런데 미세하게 보면 책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알았다. 역사책을 있는 대로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미세한 것들이었다. 필자는 책들을 모아서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지도의 형태가 동일했다. 그런데 일부 책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넓은 경우도 있었다. 책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서점에 가서 역사 관련 지도를 ‘수색’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들의 책에서는 영역이 통상영역보다 2배 이상 넓은 것도 나왔다. 백제 영토가 중국 동해안을 휩쓸어 있는 지도도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을 다만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한다.’ 라는 말이 있다. 물론 그것은 어른들에 한해서이다.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것들은 던져버리는’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다.


필자는 빠르게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하, 이래서 영토가 이렇게 넓었고, 이런 점들이 기존 학자들은 모르고 있었구나. 아, 이들은 진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가? 아, 기성 역사학계에 막혀 이들은 이렇게 배척당하고 있구나. 아이(필자의 어린 시절)는 보수적인 학계에 분노를 터뜨리며 지도를 모았다.


군사력에 대한 집착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군사력에 대한 자료들을 또 있는대로 모아봤다. 그 중에서 아이는 수 천 명과 수 천 명이 싸운 시시껄렁한 전투는 던져버렸다. 수 만 명과 수 만 명이 싸운 전투도 재미없었다. 적어도 양국끼리 전쟁이라 함은 수십 만 명과 수십 만 명이 붙는 대규모 스펙타클한 전쟁이어야 했다. 혹은 달랑 수 천 명이 수십 만 대군을 물리친 기적 같은 전투도 아이를 자극했다. 아이는 전쟁에 동원된 군사력을 줄줄 꿰기 시작했고, 그 과정과 결과도 줄줄 외우고 다녔다. 큰 전쟁에는 사람이 많이 죽는 법, 전사한 숫자도 줄줄 외우고 다녔다.


아이는 지도와 전쟁으로 역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듣는 이의 입장에서도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재미난 것이었다. 듣는 입장에서는 사회경제사, 정치사, 문화사에 대해 들어주는 것보다는 훨씬 덜 지루한 일이었다. 잘난 척 하는 입장에서도, 잘난 척을 애써 받아주는 입장에서도 서로 윈윈 하는 내용이었다. 한 동안 어린 필자에게 역사란 ‘전쟁과 영토가 낳는’ 산물이었다.


그러면서 잊혀져간 것들이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시대의 정치․사회 시스템은 어떠했는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전쟁사를 공부하다보면 약간은 그런 것을 배우기 마련이다. 아이는 ‘전쟁사’를 이해함에 있어 필요한 정도의 정치․사회․문화적 지식만 익혔다.


아이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아이는 마치 전쟁을 하듯이 어른들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있었다면 인터넷에서 신나게 대전을 벌였겠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 필자의 눈에 보이는 가장 뛰어난 역사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국사 선생님’이었다. 아이는 국사교과서를 찢어버리고 당당하게 선생님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제자가 용하다 생각했는지, 아니면 귀찮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실력이 들통날까 두려웠는지 모르겠지만 ‘니 말이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물러서곤 했다. 아이는 이를 두고 ‘새로운 진보된 지식이 기성의 낡은 지식을 깨는’ 승리라고 자축하였다. 아이의 친구들도 미친놈처럼 책만 보는 자신들의 친구가 이상했지만, 적어도 역사실력만은 인정해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아이는 새로운 ‘역사’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외눈박이 「역사」였다.


어떤 나라를 보면 그 나라가 최전성기를 구가한 직후, 순식간에 무너지는 나라가 있었다. 몽고 제국이 그러했고, 티무르 제국이 그러했다. 무너지는 이유는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러했다. 기초가 부실한 외눈박이 역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필자의 외눈박이 역사는 스스로 무너져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시사를 공부한 것이다. 고2부터 신문과 월간지들을 보면서 필자는 시사에 대한 관심을 넓혀나갔다. 시사는 우리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치․사회․경제․문화․관념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우리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아이는 시사에 나오는 우리의 삶처럼, 과거 조상들의 삶도 복원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혀 복원할 수 없었다. 전쟁과 지도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무지함에 스스로 놀랐다.


영토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치러야 할 전쟁이 많다는 것이다. 전쟁의 규모가 클수록 대량 살육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병사들은 처자식을 남겨두고, 자신이 가꿔야 할 땅들을 남겨주고 떠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행히 그 병사가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처자식은 굶어죽지 않았을 지, 자신의 땅은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고 있지 않을 지, 또 언제 다시 끌려갈 지, 두려운 마음으로 귀향할 것이다.


고구려 을지문덕은 수나라 대군을 막기 위해서 청야전술을 펼쳤다. 수나라 군대의 전진방향에 위치한 모든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것이 그 전술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끌려나가고, 곡식들은 모조리 불태워지고, 곡식이 자라고 있는 땅은 모두 짓밟혔다. 심지어 집도 헐어버렸다. 수나라 군대는 식량이 떨어졌지만, 고구려 땅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비가 오지만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수나라 군대는 지쳐갔고, 고구려 군대는 지친 수나라 군대를 손쉽게 상대했다. 전쟁사에서는 을지문덕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수십, 수백 만의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애써 키운 논밭은 폐허가 되고, 집은 사라졌다. 고향으로 돌아오니 고구려 백성들도 수나라 군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땅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청야전술은 고구려의 국력을 갉아먹으면서, 백성들의 피눈물을 감수해야 하는 비상수단이었다. 돌아온 백성들의 한숨소리와 피눈물을 아이는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 시대 사람에게 그 나라의 영토가 넓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무것도 없다. 한 평생 자신의 터전에서만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영토가 넓어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새 영토를 얻으면 그 영토는 모두 귀족들의 손에 떨어진다. 영토가 넓어지면 그 영토를 다스릴 사람이 필요하고,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 되레 세금만 오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도의 영토 경계선은 그저 경계선을 나타낼 따름이다. 그 경계선 안의 모습은 말하지 않는다.


외눈박이 역사는 이렇게 무너져갔다. 역사는 사람들의 삶을 토대로 구성되어야 한다. 영토니 전쟁이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필자가 외눈박이를 벗어날 무렵, 또 다른 외눈박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조선의 영토가 수천 킬로미터이다.”, “당시 이런 무기들이 조선의 승리를 가져왔다.”, “실제 조선의 영토는 중국대륙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따지기 전에 우리민족의 영토가 넓었다면 기분 좋은 것이다. 전쟁은 국운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들은 멈춘다. 왜 그럴까? 필자도 그랬고,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단 하나의 이유다. 어제와 오늘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다.


늘 외침을 받고, 손바닥 만한 한반도 언저리에서 맴돈 우리의 역사, 중국의 지도와 로마의 영역, 하물며 지금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경제력이 뒤떨어지는 몽고조차 한 때는 세계를 지배했었다. 영국은 본토가 손바닥 만했지만, 식민지는 본토의 100배도 더 되었다. 심지어 일본조차 태평양 전쟁 당시 한때 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근 지역까지 진출했었다.


외눈박이들은 여기에 분노했다. 그래서 기를 쓰고 한 치라도 더 영토선을 넓게 긋기 위해서 문헌을 뒤적이고, 강대국에 부끄럽지 않은 군사력을 가졌다고 강조하며, 우수한 무기로 일당백으로 싸우는 조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반쪽도 못 가지고 있는 우리의 답답한 현실에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조상들의 영토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긍심은 강해지고, 현실에 대한 공격도 강해진다. 자긍심과 비난이라는 두 약물은 두뇌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렇게 외눈박이들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 이 외눈박이들은 단순한 피해의식의 결과일까? 아니다. 근원을 따지면 성과 중심주의, 결과 중심주의 사회가 나온다. 사람들은 내용이나 과정은 늘 생략하고, 타이틀과 결과만을 보며 사물을 판단한다. 외눈박이들은 우리사회의 기준선을 그대로 따라서 역사를 본 것에 불과하다. 확실히 영토니 전쟁이니 하는 것은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내 말을 안 들어줘서’ 숭례문에 불을 지른 외눈박이, 부도덕하고 무원칙해도 경제만 살리면 그만인 누군가에게 표를 준 외눈박이, 천당에 가려면 돈을 내어야 한다고 믿는 외눈박이들이 무수히 널렸다. 당신은 외눈박이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후손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고르게 볼 것이며, 역사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21세기 초반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의 국력보다는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1945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외눈박이들의 역사. 이제는 끝낼 때가 오지 않았는가? 쪽팔린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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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5. 15:01

2012년에서 온 사람(2007년 글) 과거 글들/시사2008. 2. 25. 15:01

길을 가는데, 갑자기 사람하나가 옷깃을 잡는다. 조용히 쳐다보니 눈자위가 퀭하고, 머리는 산발인데 손에 이런 저런 전자기기를 들고 있더라. 무슨 용팔인가 싶어 기기를 쳐다보니 그는 나에게 “여기가 2007년 이냐?” 라고 묻는다. 질문이 이상하다. “여기가 사림동인가요? 시청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요? 얼굴에 마가 끼여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주님을 믿으십니까?” 같은 흔히 듣는 질문이 아니었다.

“저기,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라고 물음에 물음으로 물었다. “2007년이 아냐?” 그도 물음으로 물었다. “2007년 11월 15일입니다.”라고 나는 이상한 물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쩌다 나는 그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늦가을 바람이 겨울의 칼을 품고 휘날렸다.

그는 2012년에서 왔다고 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그걸 납득해 버렸다. 그는 지금 이 나라를 바꾸러 왔단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왔단다. 그 말 또한 나는 납득해 버렸다. 나는 미래가 궁금해졌다. “저기…. 2012년은 살만한가요?”

그의 대답은 참으로 단순했다. 똑같이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5년 간극인데 차이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고 답했다. 나는 고개를 또 끄덕였다. 그래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말했다.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지옥은 많다. 교통지옥, 입시지옥, 취업지옥 등등. 나는 조리 있게 반격을 가했다. 그런데 그는 나의 말에 웃어버렸다. 이건 지옥이 아니라 힘든 것뿐이다. 지옥은 어떤 해결의 가능성마저 상실한 절망의 상황을 말한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 겨울의 칼을 품고 날리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날씨가 춥군. 감기 걸리기 좋은 날씨야. 2012년은 말이야. 감기 때문에 병원 가도 몇 만원씩 내야 해.”

나는 속으로 ‘의료서비스가 아주 좋아졌거나 고급 병원이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의 속도 모르고 말을 이어갔다.

“영리법인이 생겨서 말이야. 국민의료보험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영리법인으로 가버렸어. 고급 의료혜택을 누리겠지. 의료보험공단에 고액 의료보험료를 납부하던 사람들이 다 가버렸으니 공단 예산은 구멍 나고, 의료보험혜택은 줄어들지 않겠어? 그리고 복제약도 못 만들어. FTA 협정 때문이지. 약값이 엄청 비싸기 때문에 이제 병원도 맘대로 못가.”

나는 속으로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차가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뿐이야? 게다가 사람들의 수입은 더 줄었어. 말로는 경제성장 7% 했다지만 성장한 돈은 모두 상위 1%에게 다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조금의 혜택도 입지 못해. 중소기업들은 모두 도산했고, 대한민국에는 초대형 독점 재벌만 몇 개 남았어. 많은 사람이 실업을 했고, 취업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지. 적대적 인수합병 광풍이 불었지. 그리고 합병한 이후에는 구조조정의 광풍이 불었지. 중소기업을 지탱해 주던 몇 안 되는 혜택도 사라지고,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제어할 몇 안 되던 방패막도 사라지고, 외국 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던 몇 안 되는 방벽도 무너졌지. 기업들이 미친 듯이 죽이고 죽이는 혈전을 치르고 나니 몇 개의 대 재벌만 남았고, 엄청난 실업자만 남았지. 독점 기업은 물가를 올리고, 공공부문은 모두 민영화되어 대 재벌들에 놀아나지. 그들은 효율성과 이윤을 위해서 구조조정과 공공요금을 상승했지. 외국 자본은 단물만 빨아먹고 기업들을 내다버리지. 이런 문제를 관리할 국가는 오히려 이 현상을 부추기까지 하지. 어쨌든 통계수치는 상승하지, 국민소득 4만 달러고, 수출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하지. 이 모두가 상위 0.1%가 이룬 것이지. 중요한 것은 분배시스템이 모두 붕괴했기에 이들이 이룬 것들은 이들에게만 넘어가지. 반면 4만 달러지만 굶어죽는 사람들도 생기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은 더 많고, 목을 매는 사람은 더욱 많고, 범죄자로 전락한 가난한 사람은 더더욱 많지. 감세정책이라는 이름 아래에 부유한 이들에게 거두던 쥐꼬리만한 세금도 사라지고, 조세수입이 줄어들자 정부에서는 순식간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쥐꼬리만한 지원도 없애버렸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말 쥐꼬리를 구워먹고 살지. 정부에서 못 주니 손으로도 잡아먹어야지? 안 그래?”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만 껌벅였다. 내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는 나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특성화고,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등이 판을 치고 있지. 그 학교의 수업료는 월 300만원이 넘지. 대학교에서는 정부의 지원과 간섭이 줄자 알아서 등록금을 올리기 시작했고, 알아서 대입제도를 만들어서 운영하기 시작했지. 내신은 포함되지 않는, 엄청나게 어려운 본고사 시험으로 대체되었지. 그래서 앞에서 말한 고등학교가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본고사 문제를 가르칠 선생이 없지. 위에서 말한 학교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아예 학교를 안 가고 학원만 다니지. 가난한 이들만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평준화는 애써 무너뜨릴 필요도 없지.”

그의 넋두리 속에서 나는 학원을 운영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 했다.

“대학도 미쳤지. 등록금이 미쳤고, 학사과정도 미쳤지. 모두 어설픈 콩글리쉬로 수업하고 답하지. 기초학문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고, 그나마 돈 될 수 있는 응용학문만 가르치지. 학생들도 미쳐서 그들을 위해 서로 뭉칠 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입학하고 졸업하지. 학생들은 그저 재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아름다운 존재들이지. 남는 돈으로 아름다운 건물이나 쳐바르게 하니까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나는 그의 비유에 잠시 웃었다.

“아름다운 것은 이것 말고도 많지. 대운하를 한다고 온 전국을 파 뒤집고, 대운하를 따라서 아름다운 호텔들과 리조트들이 즐비하게 건설되었지. 상위 1%만을 위한 공간들이지. 그들은 아름다운 호텔에서 떡을 치고,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골프를 치고, 아름다운 카지노에서 포카를 치지. 정말 아름답지 않아?”

말을 제법 잘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퀭한 두 눈만 바라보았다. 아름다움을 말하는 그의 입이 다크써클과 눈꼽이 낀 그의 눈과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교회도 아름답지. 대통령이 환장한 개신교인이니 교회는 신이 났지. 대놓고 정치와 경제에 간섭하지. 교회에 가야만 그나마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그리하여 교회 신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지. 사방에서 교회의 집회를 볼 수 있고, 교회 영업사원들은 신도를 늘리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정신없이 헌팅을 하지. 돈이 모인 교회는 지금보다 더욱 아름다운 교회를 짓기 시작하지. 그래서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물들지. 마치 공동묘지처럼 말이야. 그들이 말하는 이단이나 신흥종교들은 새로 만들어진 종교법에 의해서 모두 몰락했지. 경쟁자들을 걷어낸 것이지. 덕분에 일요일에는 볼 수 없는 것이 많지. 국가고시를 볼 수 없고, 모두 교회 갔기 때문에 도로에 차들을 볼 수 없고, 사람이 없으니 행사를 볼 수 없고,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혼식장엔 사람을 볼 수 없지. 참, 결혼식은 어지간하면 교회에서 하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을 잘하면 목사나 할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다 저항세력은 없냐고 물었다. 항상 반대편은 있기 마련이니까.

“저항세력은 아직도 있지.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졌지. 개혁언론들은 기업의 광고를 받지 못해서 죽어가고, 개정된 집회와 시위에 대한 법률로 집회와 시위는 더욱 하기 어려워졌지, 물론 교회에서 하는 행사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법률의 간섭을 받지 않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은 보수세력의 공격으로 연구실적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쫓겨나고, 시민단체들은 정부지원금이 사라지자 말라죽어버렸지. 외국자본의 침탈과 적대적 인수합병,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 노조들이 최후의 대반격을 펼쳤지만 멍청한 여론에 밀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무너졌지. 이제 사람들은 부조리는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지. 어떻게 해야지 바꿀 수 있는지 모르지. 진실은 사라졌고, 거짓은 현실로 다가오고, 경제 성장과 4만 불의 신화는 거짓을 뒷받침해주지. 그래서 내가 왔다네.”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생각이 있어 그를 잡았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어쩌시려구요?”

“지금이라도 막아야지. 대통령을 새로 뽑는 시점이고, FTA 협정 비준안이 아직 국회에 있을 때 막아야지.”

“역사가 바뀌면 아저씨는 사라지지 않습니까? 과거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를 희생하시렵니까?”

“내 같은 놈은 2012년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사라진 들 무엇이 문제냐?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기기에는 2012년의 모든 데이터가 들어있지. 이 무서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일단 내게 먼저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니가 바꿀 힘이 있는가?”

“아뇨, 솔직히 거기에는 새로 개발되는 곳에 대한 정보가 있겠네요. 땅에 투자를 좀 하려고 합니다. 살아남은 대 재벌의 명단이 있겠네요. 주식을 사려고 합니다. 그나마 잘 나가는 직업이 있겠네요. 일 때려치고 새 직업을 구해 보렵니다.”

“나의 일이 성공해서 미래가 바뀐다면 니가 산 땅은 똥값이 될 거고, 니가 산 주식은 휴지가 될 거고, 니가 바꾼 직업은 사라질 텐데 그래도 보고 싶으냐?”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 없고, 정치에 관심 없고, 정책에 관심 없고, 법에 관심 없고, 뭉치는 일에 관심 없고, 철학에 관심 없고, 역사에 관심 없고, 사회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 혼자 잘나는 것에 관심 있고, 지 새끼에 관심 있고,  눈 앞에 일에만 관심 있고, 텔레비전에 관심 있고, 게임에 관심 있고, 사랑타령에만 관심이 있으니 무슨 재주로 바꾸려 합니까? 미래는 안 바뀝니다. 나에게 잠시만 미래를 보여주십시오. 나라도 좀 삽시다.”

“2007년에는 못 바꾼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차피 늦었습니다. 나라도 좀 삽시다. 그것 좀 봅시다.”

“언제로 돌아가면 바꿀 수 있을까?”

“언제로 돌아가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 좀 봅시다. 제발.”

“언제로 돌아가면 바꿀 수 있을 지 말해라. 그럼 보여주마.”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언제부터인지 연대표를 더듬기 시작했다.

“1945년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분단이 시작되면서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근원이 시작된 한 해입니다. 만약 그 때, 현명한 판단을 우리 민족이 했더라면 모든 것이 바뀌었겠죠.”

“그러냐? 그럼 그 때로 돌아가야겠다. 잘 있어라.”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땅을 사야 할 곳을 알지 못했고, 주식을 사야 할 회사를 알지 못했고, 무슨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반대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 지는 알았다. 알고 있지만 피하지 못하는 2012년을 향해서 1초, 1초 나는 끌려가고 있었다.

바람이 참으로 아픈 오후였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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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네티즌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최근 아프간 사태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일고 있는 '네티즌 죽이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글을 썼습니다.


저는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교회를 꽤나 오랫 동안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생리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아프간 피랍이 났을 때, 저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오지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은 교회 위세를 올리는 가장 큰 수단이며, 목사의 업적이 됩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는 그들을 영웅취급해 줍니다. 항상 특별기도도 해주고 말입니다.


이번 샘물교회 사건도 봉사활동이 아니라 '단기선교'활동이었습니다. 팀명도 '선교지원팀'이라고 해서 현지에 있는 3분(박은조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사역자가 7분이라네요.)의 선교사님을 돕기 위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선교에는 봉사활동이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봉사'가 중심이냐 '선교'가 중심이냐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교가 중심입니다. 봉사는 선교의 한 부분입니다.


초기에 언론도 그렇게 썼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초기 기사들이나 보도들은 대부분 '선교활동'이라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선교'라는 단어는 지워지고 '봉사'라는 단어가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언론이 이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금번 샘물교회의 단기선교지원서 양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능적으로 복사해서 붙여넣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샘물교회 단기선교지원서(명백한 선교활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가 7월 23일 밤 9시경입니다.


본문에는 그저 붙여넣기만 하였고, 아무런 내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실 그대로 붙여넣기만 하였습니다. 블로그에 사람이 전혀 안 오다가 그것 때문에 한 20명 정도 하루에 방문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가 보다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블로그 관리를 안하는 사람입니다. 보면 보고, 말면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일이 한 통 날아왔습니다. 7월 24일 오후 2시였습니다. 채 15시간도 안 되어서 날라온 메일입니다.





저의 글(정확히 말하면 퍼온 샘물교회의 단기선교 지원 양식)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아서 다음에서 지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저 사실을 복사해서 '저장용'으로 붙여놓았을 뿐입니다. 이것을 제가 알리고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저 제 개인적으로 '아프간 피랍사태는 선교활동의 문제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자료를 블로그에 저장하기 위해서 붙여온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자 황당했습니다. 저는 악플을 다는 악플러도 아니며, 오히려 소수의 네티즌들이 인터넷 기사 덧글란을 장악함으로써 다양한 공감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악플을 달거나 욕을 할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그 누구든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도 만약 고발이 이루어지고 출석을 요구한다면 출석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의 행동이 실책이었다면 사과하고 법의 요구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네티즌들을 공격하는 기사가 마구 뜨기 시작했습니다. 늘상 그렇듯이 보수언론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뉴라이트 계열 인터넷 신문도 비슷한 글을 올린 것 같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한 네티즌'이라는 내용입니다.


물론 저는 피랍된 사람들이 무사히 석방되길 바라며, 일부 네티즌들의 행동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그게 아닙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개신교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분별한 선교활동의 책임도 질 수 있으며, 그렇게 기도하고 노력해도 석방이 안 되는 것을 보니 '역시 신은 없다'라는 회의론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반 개신교'자료들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개신교계는 어떻게 해서라도 책임을 얼렁뚱땅 넘겨버리고 누군가에게로 화살을 집중해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네티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네티즌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들의 책임인 무분별한 선교활동을 봉사활동으로 덮어버리고, 네티즌 전체를 양아치로 몰아가서 사건의 범주를 '한국 개신교'가 아니라 '우리 사회'로 무작정 확대해 버렸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은 선량하지만 네티즌들은 사악하다는 식의 이분법이 동원된 것도 전형적인 개신교식 발상입니다. 그들은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과 오프라인 시민들을 가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아프간에서 저들이 무엇을 했고, 이 사건의 책임과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하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미디어에 정보를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본 내용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수의 시민들이 우리 네티즌들을 '또라이 집단'으로 치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 우리는 실제로는 힘이 없는 집단입니다. 우리는 어떤 단결된 조직력으로 뭉쳐있지도 못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지우라면 우리의 글은 어떤 글이든지 지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게시판을 닫아라면 닫아야 합니다. 우리는 개신교회처럼 언론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취재의 대상일 뿐, 언론의 논조를 좌우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다수이고, 다수이지만 흩어져 있으며, 정체성이 불분명합니다. 이지메를 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타켓입니다. 물론 우리도 지난 시간동안 많은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자기와 성향이 맞지 않는 세력은 무작정 앞뒤 볼 것 없이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날아오는 공격의 화살이 모두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저들과 싸우는 방법입니다. 일관되게 진실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게시판에서 글질만 하는 것은 곧 게시판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게시판을 닫으면 그만입니다. 친구에게, 부모님에게 진실을 알리십시오.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갔으며,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이것이 가장 사람들이 모르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착한 일만 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흥분할 이유는 없겠지요.) 누가 진정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왜 책임이 정부가 아니라 교회에 있는지 말입니다.(물론 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할 무조건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진실을 알리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여기 있는 목적이고, 우리가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저는 카피레프트주의입니다. 저의 글은 마음대로 퍼가시고, 마음대로 변형하십시오. 모든 정보는 모든 이의 것이니까요.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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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운 2008.02.25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기 있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knowhow.or.kr이나 어디에도 알려서 언제라도 공동 대응했으면 합니다. 참 골때리는 놈들입니다.

  2. ver 2008.02.27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사활동하러 가신줄 알았는데...

    선교가 목적이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