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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8.04 기상청 최악의 흑역사, 태풍 셀마 진로조작 사건

지금도 40대 이상에게 1987년 태풍 ‘셀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6.29선언과 민주화, 곧이어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7월 15일과 16일에 걸쳐 한반도는 태풍 셀마의 내습을 받았다. 이로 인해 무려 345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345명의 인명피해는 해방 이후 역대 3위(1959년 사라 849명, 1972년 베티 550명)에 해당되는 큰 피해였다. 


먼저 태풍 셀마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태풍 셀마 최전성기 사진(필리핀 동쪽 해상).






태풍 셀마는 1987년 5번째 태풍으로 괌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어 필리핀 동쪽해상에 도착했을 때 중심기압 911헥토파스칼, 중심최대풍속(1분) 초속 65미터에 달하는 매우 강한 태풍으로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태풍 셀마의 압권은 바로 태풍의 크기(영향권)이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초속 15미터 이상 강풍이 부는 범위가 무려 1850킬로미터에 이른다. 한반도 4~5개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소리다. 최근 5년새 영향권 1800킬로는 고사하고 아예 1000킬로미터가 넘는 태풍이 거의 없을 정도로 셀마는 엄청난 영향권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건 필리핀 동쪽 해상에 있을 때고, 아시다시피 태풍은 올라오면서 점차 힘이 약해진다. 태풍 셀마는 전남 고흥반도 부근에 상륙하게 되는데 당시 중심기압이 970헥토파스칼, 중심최대 풍속은 40미터 정도로 상당한 힘을 자랑했지만 ‘역대급’은 아니었다. 참고로 태풍 사라나 태풍 매미 등은 중심기압 950헥토파스칼, 최대풍속 5~60미터를 곳곳에서 기록할 정도였다. 강우량도 산청 296미리를 최고로 강릉 270미리, 남해군 265미리 등 200미리 이상을 기록했다. 강우량도 적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2002년 태풍 루사(강릉에 870미리), 1991년 태풍 글래디스(부산~울산에 500미리 이상) 퍼부은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자,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사실 바람이나 강우량 모두 역대급은 아닌 태풍이다. 그런데 왜 역대급 피해를 봤던 것일까? 


기상청(당시는 중앙기상대)은 태풍 셀마가 북상할 때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고 대한해협, 특히 대마도 인근으로 빠져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 해군 기상대는 한반도 남부지역에 상륙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기상청은 대마도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고집스레 예보했고, 이로 인해 어선들이 대피하지 못했다.


7월 15일 태풍이 제주도 인근까지 올라왔지만 예상 진로는 여전히 대마도로 빠져 나갈 것이라고 고집했다. 매일경제 1987년 7월 15일 자 보도.



사실 초대형 태풍도 아닌 중형 태풍이 대마도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예보하면 당연히 경남 서부~호남지역 어민들은 ‘우리는 큰 피해 없겠네’라고 마음을 놓게 된다. 


그 결과 345명 인명 피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대피하지 않은 어선 어부들이었다. 또한 산업현장, 항구에서 넋 놓고 있다가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기상청에서는 태풍 셀마가 분명히 고흥반도를 지나 한반도 남부내륙을 통과해 동해상으로 빠져 나간 것을 알고도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들이 예상했던 진로대로 대한해협을 통과해 나갔다고 거짓 보도자료를 냈다. 약간 수정된 것이 있다면 대마도가 아니라 부산 앞바다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1987년 7월 17일. 동아일보가 태풍 셀마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재밌는 건 진로도 맨 왼쪽 기상대가 발표한 경로다. 자신의 오류를 막기 위해 (대한해협으로 빠져 나갔다는 것) 최대한 부산 앞바다에 스쳐 지나간 것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7월 17일 1면 기사에서 일본 기상청 진로도를 참조해 ‘예상진로가 틀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기상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7월 22일 민주당은 자체 조사를 통해 책임회피를 위한 자료조작 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기상청은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후 노동자 대투쟁, 대통령 선거 국면, 또 다시 이어진 태풍과 폭우로 이 사실은 어물쩍 넘어가는 듯 했다. 


그리고 해가 바뀐 1988년 1월, 기상청이 발행하는 <기상월보> 에 태풍 셀마 진로가 슬그머니 고흥반도를 지나 남부내륙을 통과한 것으로 기록된 것이 동아일보 기자에게 들켰고, 이로 인해 기상청 고위 관계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게 된다.


기상청이 애초에 태풍 예보를 제대로 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인명피해. 그리고 자신의 오보를 숨기기 위한 진로조작. 태풍 셀마 진로조작 사건은 기상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리고 진상을 밝혀낸 것은 동아일보의 공이 컸다. 언론 역시 공공기관의 자료를 받아쓰기만 할 게 아니라 항상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치를 다시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붉은 선이 당시 기상청 예상 경로다. 태풍 진행 경로보다 약 300킬로미터 이상 오차가 난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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