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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5. 15:01

2012년에서 온 사람(2007년 글) 과거 글들/시사2008. 2. 25. 15:01

길을 가는데, 갑자기 사람하나가 옷깃을 잡는다. 조용히 쳐다보니 눈자위가 퀭하고, 머리는 산발인데 손에 이런 저런 전자기기를 들고 있더라. 무슨 용팔인가 싶어 기기를 쳐다보니 그는 나에게 “여기가 2007년 이냐?” 라고 묻는다. 질문이 이상하다. “여기가 사림동인가요? 시청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요? 얼굴에 마가 끼여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주님을 믿으십니까?” 같은 흔히 듣는 질문이 아니었다.

“저기,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라고 물음에 물음으로 물었다. “2007년이 아냐?” 그도 물음으로 물었다. “2007년 11월 15일입니다.”라고 나는 이상한 물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쩌다 나는 그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늦가을 바람이 겨울의 칼을 품고 휘날렸다.

그는 2012년에서 왔다고 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그걸 납득해 버렸다. 그는 지금 이 나라를 바꾸러 왔단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왔단다. 그 말 또한 나는 납득해 버렸다. 나는 미래가 궁금해졌다. “저기…. 2012년은 살만한가요?”

그의 대답은 참으로 단순했다. 똑같이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5년 간극인데 차이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고 답했다. 나는 고개를 또 끄덕였다. 그래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말했다.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지옥은 많다. 교통지옥, 입시지옥, 취업지옥 등등. 나는 조리 있게 반격을 가했다. 그런데 그는 나의 말에 웃어버렸다. 이건 지옥이 아니라 힘든 것뿐이다. 지옥은 어떤 해결의 가능성마저 상실한 절망의 상황을 말한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 겨울의 칼을 품고 날리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날씨가 춥군. 감기 걸리기 좋은 날씨야. 2012년은 말이야. 감기 때문에 병원 가도 몇 만원씩 내야 해.”

나는 속으로 ‘의료서비스가 아주 좋아졌거나 고급 병원이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의 속도 모르고 말을 이어갔다.

“영리법인이 생겨서 말이야. 국민의료보험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영리법인으로 가버렸어. 고급 의료혜택을 누리겠지. 의료보험공단에 고액 의료보험료를 납부하던 사람들이 다 가버렸으니 공단 예산은 구멍 나고, 의료보험혜택은 줄어들지 않겠어? 그리고 복제약도 못 만들어. FTA 협정 때문이지. 약값이 엄청 비싸기 때문에 이제 병원도 맘대로 못가.”

나는 속으로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차가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뿐이야? 게다가 사람들의 수입은 더 줄었어. 말로는 경제성장 7% 했다지만 성장한 돈은 모두 상위 1%에게 다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조금의 혜택도 입지 못해. 중소기업들은 모두 도산했고, 대한민국에는 초대형 독점 재벌만 몇 개 남았어. 많은 사람이 실업을 했고, 취업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지. 적대적 인수합병 광풍이 불었지. 그리고 합병한 이후에는 구조조정의 광풍이 불었지. 중소기업을 지탱해 주던 몇 안 되는 혜택도 사라지고,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제어할 몇 안 되던 방패막도 사라지고, 외국 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던 몇 안 되는 방벽도 무너졌지. 기업들이 미친 듯이 죽이고 죽이는 혈전을 치르고 나니 몇 개의 대 재벌만 남았고, 엄청난 실업자만 남았지. 독점 기업은 물가를 올리고, 공공부문은 모두 민영화되어 대 재벌들에 놀아나지. 그들은 효율성과 이윤을 위해서 구조조정과 공공요금을 상승했지. 외국 자본은 단물만 빨아먹고 기업들을 내다버리지. 이런 문제를 관리할 국가는 오히려 이 현상을 부추기까지 하지. 어쨌든 통계수치는 상승하지, 국민소득 4만 달러고, 수출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하지. 이 모두가 상위 0.1%가 이룬 것이지. 중요한 것은 분배시스템이 모두 붕괴했기에 이들이 이룬 것들은 이들에게만 넘어가지. 반면 4만 달러지만 굶어죽는 사람들도 생기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은 더 많고, 목을 매는 사람은 더욱 많고, 범죄자로 전락한 가난한 사람은 더더욱 많지. 감세정책이라는 이름 아래에 부유한 이들에게 거두던 쥐꼬리만한 세금도 사라지고, 조세수입이 줄어들자 정부에서는 순식간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쥐꼬리만한 지원도 없애버렸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말 쥐꼬리를 구워먹고 살지. 정부에서 못 주니 손으로도 잡아먹어야지? 안 그래?”

나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만 껌벅였다. 내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는 나의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특성화고,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등이 판을 치고 있지. 그 학교의 수업료는 월 300만원이 넘지. 대학교에서는 정부의 지원과 간섭이 줄자 알아서 등록금을 올리기 시작했고, 알아서 대입제도를 만들어서 운영하기 시작했지. 내신은 포함되지 않는, 엄청나게 어려운 본고사 시험으로 대체되었지. 그래서 앞에서 말한 고등학교가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본고사 문제를 가르칠 선생이 없지. 위에서 말한 학교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아예 학교를 안 가고 학원만 다니지. 가난한 이들만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평준화는 애써 무너뜨릴 필요도 없지.”

그의 넋두리 속에서 나는 학원을 운영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 했다.

“대학도 미쳤지. 등록금이 미쳤고, 학사과정도 미쳤지. 모두 어설픈 콩글리쉬로 수업하고 답하지. 기초학문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고, 그나마 돈 될 수 있는 응용학문만 가르치지. 학생들도 미쳐서 그들을 위해 서로 뭉칠 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입학하고 졸업하지. 학생들은 그저 재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아름다운 존재들이지. 남는 돈으로 아름다운 건물이나 쳐바르게 하니까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나는 그의 비유에 잠시 웃었다.

“아름다운 것은 이것 말고도 많지. 대운하를 한다고 온 전국을 파 뒤집고, 대운하를 따라서 아름다운 호텔들과 리조트들이 즐비하게 건설되었지. 상위 1%만을 위한 공간들이지. 그들은 아름다운 호텔에서 떡을 치고,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골프를 치고, 아름다운 카지노에서 포카를 치지. 정말 아름답지 않아?”

말을 제법 잘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퀭한 두 눈만 바라보았다. 아름다움을 말하는 그의 입이 다크써클과 눈꼽이 낀 그의 눈과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교회도 아름답지. 대통령이 환장한 개신교인이니 교회는 신이 났지. 대놓고 정치와 경제에 간섭하지. 교회에 가야만 그나마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그리하여 교회 신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지. 사방에서 교회의 집회를 볼 수 있고, 교회 영업사원들은 신도를 늘리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정신없이 헌팅을 하지. 돈이 모인 교회는 지금보다 더욱 아름다운 교회를 짓기 시작하지. 그래서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물들지. 마치 공동묘지처럼 말이야. 그들이 말하는 이단이나 신흥종교들은 새로 만들어진 종교법에 의해서 모두 몰락했지. 경쟁자들을 걷어낸 것이지. 덕분에 일요일에는 볼 수 없는 것이 많지. 국가고시를 볼 수 없고, 모두 교회 갔기 때문에 도로에 차들을 볼 수 없고, 사람이 없으니 행사를 볼 수 없고,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혼식장엔 사람을 볼 수 없지. 참, 결혼식은 어지간하면 교회에서 하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을 잘하면 목사나 할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다 저항세력은 없냐고 물었다. 항상 반대편은 있기 마련이니까.

“저항세력은 아직도 있지.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졌지. 개혁언론들은 기업의 광고를 받지 못해서 죽어가고, 개정된 집회와 시위에 대한 법률로 집회와 시위는 더욱 하기 어려워졌지, 물론 교회에서 하는 행사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법률의 간섭을 받지 않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은 보수세력의 공격으로 연구실적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쫓겨나고, 시민단체들은 정부지원금이 사라지자 말라죽어버렸지. 외국자본의 침탈과 적대적 인수합병,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 노조들이 최후의 대반격을 펼쳤지만 멍청한 여론에 밀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무너졌지. 이제 사람들은 부조리는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지. 어떻게 해야지 바꿀 수 있는지 모르지. 진실은 사라졌고, 거짓은 현실로 다가오고, 경제 성장과 4만 불의 신화는 거짓을 뒷받침해주지. 그래서 내가 왔다네.”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생각이 있어 그를 잡았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어쩌시려구요?”

“지금이라도 막아야지. 대통령을 새로 뽑는 시점이고, FTA 협정 비준안이 아직 국회에 있을 때 막아야지.”

“역사가 바뀌면 아저씨는 사라지지 않습니까? 과거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를 희생하시렵니까?”

“내 같은 놈은 2012년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사라진 들 무엇이 문제냐?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기기에는 2012년의 모든 데이터가 들어있지. 이 무서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일단 내게 먼저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니가 바꿀 힘이 있는가?”

“아뇨, 솔직히 거기에는 새로 개발되는 곳에 대한 정보가 있겠네요. 땅에 투자를 좀 하려고 합니다. 살아남은 대 재벌의 명단이 있겠네요. 주식을 사려고 합니다. 그나마 잘 나가는 직업이 있겠네요. 일 때려치고 새 직업을 구해 보렵니다.”

“나의 일이 성공해서 미래가 바뀐다면 니가 산 땅은 똥값이 될 거고, 니가 산 주식은 휴지가 될 거고, 니가 바꾼 직업은 사라질 텐데 그래도 보고 싶으냐?”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 없고, 정치에 관심 없고, 정책에 관심 없고, 법에 관심 없고, 뭉치는 일에 관심 없고, 철학에 관심 없고, 역사에 관심 없고, 사회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 혼자 잘나는 것에 관심 있고, 지 새끼에 관심 있고,  눈 앞에 일에만 관심 있고, 텔레비전에 관심 있고, 게임에 관심 있고, 사랑타령에만 관심이 있으니 무슨 재주로 바꾸려 합니까? 미래는 안 바뀝니다. 나에게 잠시만 미래를 보여주십시오. 나라도 좀 삽시다.”

“2007년에는 못 바꾼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차피 늦었습니다. 나라도 좀 삽시다. 그것 좀 봅시다.”

“언제로 돌아가면 바꿀 수 있을까?”

“언제로 돌아가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 좀 봅시다. 제발.”

“언제로 돌아가면 바꿀 수 있을 지 말해라. 그럼 보여주마.”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언제부터인지 연대표를 더듬기 시작했다.

“1945년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분단이 시작되면서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근원이 시작된 한 해입니다. 만약 그 때, 현명한 판단을 우리 민족이 했더라면 모든 것이 바뀌었겠죠.”

“그러냐? 그럼 그 때로 돌아가야겠다. 잘 있어라.”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땅을 사야 할 곳을 알지 못했고, 주식을 사야 할 회사를 알지 못했고, 무슨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반대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 지는 알았다. 알고 있지만 피하지 못하는 2012년을 향해서 1초, 1초 나는 끌려가고 있었다.

바람이 참으로 아픈 오후였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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