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티벳의 역사(2001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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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7 15:52

티벳의 역사(2001년 기사) 과거 글들/시사2008.03.17 15:52

비폭력의 나라 티벳에 다시 총칼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필자가 예전에 쓴 기사를 하나 올리려 한다. (삐라넷)


티벳을 아는가? 지구상의 지붕에 위치한 그 곳에 지금 엄청난 위협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지난 7월 19일, 중국의 관영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중국정부가 티벳 분리주의자들의 척결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제 올림픽도 유치했으니까 그때까지 슬슬 내부정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중국군의 침략으로 120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천개의 사원을 잃어버린 중국의 '자치성'인 티벳에게 더욱 더 가혹한 통치가 행해질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중국측의 '경고'메세지이다.

티베트의 역사를 알아보고 가자.




티벳의 역사 - 중국침략 이전

기원 이전부터 중국의 서부 산악지대에는 강족과 저족이라는 민족들이 살았다. 이 민족들은 중국과는 전혀 다른 세력으로서 비단길을 통한 동서무역을 통하여 많은 번영을 누렸다. 이들의 전성기는 7세기초 토번(혹은 토욕혼) 이라는 통일국가로 이들은 다시 탄생하였다. 당시 중국 당나라는 직접적인 충돌은 최대한 피하려했고, 공주를 시집보내는 등 회유정책을 쓰면서 토번을 견제하였다.



당이 멸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도 송나라는 감히 이 나라를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다. 그러나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초강대국이 있었으니 바로 몽고족이었다. 몽고족은 티벳을 침략했지만 황제인 쿠빌라이칸이 티벳의 승려를 황제의 스승으로 두는 등 티벳 불교에 심취하여 서기 1252년 스승을 티벳의 군주(달라이 라마)로 즉위시키고 티벳을 독립시켜 주었다. 세계 최강대국으로부터 피 한방울 안흘리고 단지 종교의 힘만으로 티벳은 독립을 쟁취한 것이다. 이때부터 티벳은 정치와 종교가 합일된 지배체제를 굳히기 시작했다.



티벳은 독립된 후 명나라와 청나라때까지도 독립된 세력을 유지하였다. 청나라 강희제 재위년인 1718년 티벳은 청나라에 복속되지만 실질적인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반독립국가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현재의 티벳 독립운동의 힘은 이런 역사에서 나오는 것 같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러시아는 티벳을 중국에게서 떼어내고 자신들의 세력아래 편입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하고,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그 혁명의 와중에서 티벳은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30년부터 다시금 티벳에 관리를 파견하고 중국의 종주권을 공표하였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티벳은 사실상 독립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티벳은 중립을 선포하고 또한 세계의 공식조약에도 가맹하는 등 완전한 독립국으로써 인정을 받았다. 적어도 1950년까지는.


중국군의 침략

독립국 티벳에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니, 바로 중국군의 침략이었다. 1950년 10월 티벳은 중국군의 총칼 앞에 무너지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국제연합군의 개입과 영국의 지원을 기대하였으나 모두 실패한 끝에 51년 5월 중공의 종주권과 티벳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7개항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라싸(티벳의 수도)에 중공의 민간 주재기관과 군사사령부를 설치하게 하고 시캉성[西康省] 창두 지구를 편입받았다. (이 조약은 중국에서 완전히 위조한 무효조약이다. 우리나라 을사국치조약처럼)

그 후 중공군 및 민간인의 계속적인 유입으로 인한 자원 부담과 양쯔강[揚子江] 상류의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티벳인에 대한 박해를 계기로 1959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이 반란으로 약 10만여명이 중국군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사망하였다.)이 일어났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지도자로 내세운 이 반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 채 실패로 끝나고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많은 추종자들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망명정권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과 함께 티베트에서는 중국 체제를 본 뜬 파시스트적 지배가 실시되어 사유재산이 몰수되고 사원과 귀족의 영향 아래 있던 티베트의 사회구조는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체제로 바뀌었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티벳의 민중해방운동을 실현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편의일 뿐이었다.

중국은 자치를 유지한다는 명목을 세우기 위하여 중국의 꼭두각시인 새 판첸 라마를 임시 행정부의 의장으로 앉히고 수많은 불교 사찰 가운데 상업적으로 볼만한 것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으며 승려들의 대부분은 피신하거나 투옥되었다. 그 뒤 중국의 지배에 반발하고 적대적인 티벳민에 대한 강제는 계속되었으며 1961년, 62년 기근으로 티벳민의 대항쟁이 일어나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티벳민들이 인도로 유입되고 게릴라전이 계속됨으로써 괴뢰의 판첸 라마도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65년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어 민족자치를 인정하고 당시까지 행정구역의 하나였던 창두 지구를 시짱 자치구에 편입시켰지만 독립을 향한 티벳 민중의 저항은 끊이질 않았다. 아래는 중국에 의한 티벳자치정부가 수립된 이후 일어난 티벳민중의 항쟁목록이다.

1987년 10월 1일: 59년 이후로 최대의 독립 시위 발생, 중국군경의 야만적 테러로 유혈사태 발생  
1987년 10월 4일: 티벳민중 시가체에서 독립의거, 중국군경 유혈진압
1987년 10월 6일: 수도 라사에서 또다시 독립시위, 승려 60여명 체포
1987년 10월 7일: 중국정부, 티벳으로 통하는 외부통신 완전차단, 외국인 기자 15명에게 48시간 이내에 티벳으로부터 철수할 것을 명령
1989년: 수도 라사에 계엄령 선포. 13개월동안 계엄령 유지
1993년: 라사 민중의 생활고에 의한 시위발생
1998년: 티벳 청년당(Tibetan Youth Congress) 소속 6명 단식투쟁단 중 Thupten Ngodup 분신, 다음날 12시 사망.
2000년: 중국 티베트자치구 (괴뢰)인민정부 출범, 티베트불교 4대 종파중 백교 지도자인 카르마파라마가 인도로 탈출


티벳이 니들꺼냐?

중국이 이처럼 티벳을 쥐고 있는 이유는 '원래 티벳은 중국의 영토'라는 것이다. 하지만 앞의 역사에서 보는 것처럼 티벳은 분명 독립국이었다. 그리고 티벳의 전통이나 체제등은 우리들이 조금만 생각해봐도 중국과는 뭔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티벳은 중국과는 다른 법률, 언어를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습과 풍습은 완연히 다르다. 또한 근대이후에는 영국이나, 네팔, 인도, 몽골과 조약을 맺기도 하였다. 근데 중국이 티벳이 자기네 나라였다고 우기는 것은 늘 중국이 국력이 앞섰으며, 조공을 바치고 속국을 자칭했다는 것이다.

'그럼 중국꺼 맞네?'라고 하는 분 있다면 한 마디 묻겠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따진다면 우리도 중국의 영토가 된다. 중국은 '황제'의 국가였고, 우리는 '왕'의 나라였다고 하니까.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중국에 대항하여 달라이 라마는 수많은 나라와 정상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외쳤지만 다들 들어주는 척만 하였다. 유럽연합의 결의문도 티벳인들에게는 한줌의 햇볕조차 되지 못했다. 지금 중국은 티벳에게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당했던 것보다 더욱 가혹하고 처절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개만 들어보자.

1) 지금 현재 서장 자치구는 과거 티벳의 영토 절반이상을 상실한 반쪽 자치구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거기에 댐을 짓고 자연을 파괴하고 군대를 주둔하기 위하여 티벳에 도로와 공공시설을 만들고 있다. 이미 티벳에는 수만의 군대와 경찰이 주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그것이 티벳민의 생활을 위한 기반시설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티벳민들의 생활수준은 1950년 중국군 침략때와 다를바 없는 수준이다.

2) 중국은 기가 막히게도 티벳 여인들에게 낙태수술과 불임수술을 강제로 행하고 있으며 티벳민들을 내륙으로 옮기고 있다. 수억의 중국인들 아래서 중국본토의 티벳민들은 서서히 중국인들로 동화될 것이라는 심산이다. 또한 700만명의 티벳민이 있는 서장 자치구에 수천만의 중국인들을 티벳으로 강제 이동 시킴으로써 티벳민의 종족특성을 희석시키고 나아가서는 완전히 티벳의 씨를 말리겠다는 최악의 수단인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가 겪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3) 티벳에서의 임의적인 체포와 납치, 구금은 이제 옛말이 된지 오래다. 그 중에서는 9살짜리 소년도 있다. 이 소년은 티벳민들에게 판첸라마라는 매우 높은 종교적인 칭호를 받는 아이다. 이 아이도 지금 중국에게 납치당해 중국 어느 강제수용소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납치된 자에 대한 고문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중국은 만행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못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경제적 실리나 얻으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하려다가 중국의 눈치 땜에 비자를 발급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은 언제나 경제의 논리 앞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우리 뭐해야 하지?

우리가 쪽바리(일본제국주의) 밑에 있을 때 티벳과 다를 바 없는 만행을 당했다. 그리고 우리는 계란에 바위치기 식으로 끝없이 투쟁을 하였다. 그 결과 간신히 독립을 얻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독립은 불완전한 분단으로 가는 독립이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우리는 티벳의 고통을 상상이나마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하지?

동아일보에서는 현재 티벳에서 산업화 바람이 불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여행사들은 티벳의 장관만을 보여주는 코스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티벳민들은 우리와 비슷한 풍속을 가지고 있다. 색동옷을 입는다거나 그들의 전통연극에서 우리는 뭔가 우리와 아주 가깝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체계가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는 이들을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왜냐면 우리도 이들처럼 고통을 받았으며, 외롭게 투쟁하였다. 이들은 지난 50년간 120만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문화는 거의 완전히 파괴가 되었으며, 상업주의 정책에 의하여 이들은 주권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다만 '구경거리'로 전락하였다.

우리는 중국에게 대화가 없는 단순한 힘의 논리로 억압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보여줘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이 파시스트를 몰아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그런 공산주의자라 하더라도 그 권력의 칼날을 민중에게 돌리면 파시스트나 다름없다.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우면서도 자연스러웠던 문명은 완전히 소멸되고 말것이다.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 그리하여 군대조차 없던 나라, 이 티벳이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http://tibet.or.kr 티벳인권 독립협회
http://www.tibetfriends.org/ 달라이 라마 방한 공식추진위원회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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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nnie 2008.05.01 0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퍼갈께요.

  2. ㅇㅇ 2016.12.21 0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