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어째서 네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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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3. 1. 23:22

어째서 네꺼야? 과거 글들/기타2008. 3. 1. 23:22

 

 오늘날 이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한때 이 시장경제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비인간적인면에 반발하여 공산주의가 세계를 휩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 공산주의는 그 비효율성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결국엔 시장경제의 세계로 회귀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날 세계경제를 운영하는 원리인 시장경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사유(소유)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시장경제는 시장이 중심이 되는 경제형태를 말한다. 시장이란 재화의 매매가 일어나는 곳을 말한다. 물건의 매매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소유가 정해져야한다. 니 것과 내 것이 정해져있지 않은데 물건을 사고 팔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시장이 형성되려면 소유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이 중심이 되는 경제 형태인 시장경제에서는 소유라는 것은 기본적인 필요조건인 것이다.

 오늘날의 소유의 개념은 ‘개인의 사적소유(사유)’이다. 이와 같은 소유의 개념은 언제부터 형성이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생겼을 때부터 생겼다고 착각하기 쉽다. 어찌보면 그런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면 이러한 개념은 현대인들에게 공기와도 같이 당연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니 것, 내 것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린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 독자는 상상할 수 있는가. 구소련처럼 될 것 같은가. 그만큼 모든 것에 사유가 정해진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유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가 사유가 없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인류는 사유가 존재한때 보다 존재하지 않은 때 산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인류의 소유의 역사를 통해 사유가 어떻게 성립되는 알 수 있다.

 역사의 여명기 인류는 씨족제 사회였다. 씨족이라 성(姓)을 공유할 수 없는 집단을 의미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동성동본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시대에는 인류는 주로 씨족이 모인 부족단위로 모여 살았으며 사회의 구성단위는 씨족이었다. 오늘날은 가족이듯이 말이다. 재산은 씨족이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재산이란 개인이 아닌 씨족공동의 소유였으며 공동으 물건을 개인이 마음대로 사고판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땅의 매매라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매매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이러한 시기에 거래에 우리가 생각하는 거래에 가장 가까운 건 지금 당장 내 손안에 있는 것(예를 들면 음식물)을 서로 간에 교환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나타난 것이 저당이라는 것이었다. 재산이 씨족의 것이었기에 팔수는 없고 대신 빌려주는 형태로 갚을 때까지 저당을 잡히고 돈을 빌리는 것이다. 주로 토지나 인신에 대해 나타났다. 그러나 오늘날과는 달리 반환권이 전제된 저당이었다. 아주 땅을 주어버리거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을 갚으면 언제라도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한번 땅을 팔면 팔 때 받은 돈을 다시 줄 테니 되팔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다시 사고 싶다면 새 주인과 흥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명의 여명기에는 그러한 권리가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면 그 땅의 실질적 소유주는 바뀌었어도 여전히 소유주는 팔기전의 사람 아니 씨족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신이 빌린 것의 대가로 자신도 땅을 빌려준 것에 불과했다. 이것이 고대의 매매였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이러한 저당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누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빌려준 돈의 이자와, 저당으로 잡은 넓은 토지를 통해 계속 부자가 되어가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져 가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화가 났다. “언제까지 이자를 내야하면 언제까지 땅을 빌려줘야 하는가!” 결국 사람들은 무기(이 시대엔 모두가 무기를 갖고 있었다.)를 들고 나와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해버렸다. 부자들은 난리가 났다. 오늘날이면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면 되지만 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때는 군대가 없고 전쟁이 나면 시민들 더러 알아서 무기를 들고 나오라고 하던 시대였으니까. 즉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농성하는 이들이 군대였던 것이다. 물론 부자측도 가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이었으며 군대였다. 하지만 숫적으로 부자는 소수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다수였다. 결국 부자들은 빚을 떼였다. 소유가 무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마음대로 파괴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역사는 이 사건을 ‘솔론의 개혁’이라고 칭송을 한다.

 이 사건은 소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보여준다. 루소의 경우 소유란 ‘사회적 약속’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처음엔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을 하고 빌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떼먹었다. ‘자신이 직접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라면 부자들이 고리대를 하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여기서 나오는 채무관계에서 보듯 힘이 최고인 것이다. 채권자의 소유를 마음대로 파괴해버린 채무자들의 행동의 원동력은 바로 채무자들의 무력이었다. 소유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여기서 보았다. 바로 힘을 가진 자가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소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지킬 힘이 없는 자에겐 소유할 자격이 없다. 고대 그리스시대의 채권자들처럼 떼어먹힐 뿐이다. 그러고도 ‘폭동’이 아닌 ‘개혁’이 된다. 그래서 문명의 여명기에는 씨족이 재산을 가지고 씨족원들이 공동으로 재산을 방위하였으며, 이후에는 국가라는 것을 만들어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이 초기에는 그 공권력이 미약하고 정교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사람들은 공동체의 단위로 재산을 가지고 그 재산을 방위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국가의 공권력은 점차 강해지고 정교해졌으므로 시대가 흐름에 따라 재산을 소유하는 단위가 작아졌다. 처음엔 씨족 단위로, 그 다음엔 가문 단위로, 그 다음엔 가족 단위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개인별로 재산을 가지고 지키게 되었다. 국가가 강력해져 남의 재산을 침탈하는 자를 응징해주는 자들을 제거하는 힘이 강해졌으므로 오늘날엔 혼자서도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사유가 이루어진 때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이다. 이때 오늘날과 같은 사유재산이 성립된다. 그리고 사유재산에 대한 국가의 태도 또한 결정된다. 즉 개개인의 재산을 지키는 경찰국가로써 근대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공동체도 이루어야했고 창과 방패로 무장도 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총을 집에다 비치해둘 필요도 친척들이 한마을에 모여 살 필요도 없다. 왜냐면 타인의 재산을 침탈하는 자는 국가가 공권력을 발동하여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류가 가진 풍요는 과거와는 달리 개개인이 자신들의 에너지를 재산을 지키는데 낭비하지 않고, 돈을 버는 데에만 투자한 결과 창출된 면도 있다. 산업혁명이 개개인이 자신이 재산을 보호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자 일어났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하겠다.

 결국 소유란 소유를 지킬 수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이고, 소유의 역사는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이 스스로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으므로 경찰국가인 근대국가가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는 ‘개인의 소유’는 나타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스스로는 자신의 것을 지킬 용기가 없는 비겁한자나 하는 주장이다. 국가의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니, 그렇게 해서 국가에 빌붙으려고 그러는가. 국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국가라는 거대한 후원자에 기대어 세계경제를 움직이겠다는 발상은 ‘무한경쟁’이 아니라 ‘무한불공정의 유지’이다. 정녕 무한경쟁이 되려면 오히려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는 완전하게 무정부상태가 되어야한다. 그래야 모두가 완전히 똑같은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렇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진 위대한 인간이 하는 말은 무정부주의다. 물론 작금의 경제학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생각하기 곤란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독자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면 끝을 내겠다.

“그대는 국가가 없어도 스스로의 것을 지킬 자신이 있는가.”



 

Posted by 티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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