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JTBC '정유라 직접 신고' 논란을 보며…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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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좋아하지는 않고, 유대인 격언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나마 내가 하나 공감하는 게 있다. 


"누군가 도와주려면 끝까지 도와줘라"


우리나라 언론도 이런 적극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슈만 키워놓고, 나머지는 시민단체나 정치권에 맡겨 놓고 빠져 버린다면 그게 기자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내가 진주시 수곡면 사전투표 비례대표 몰표 사건을 취재할 때였다. 몰표 논란이 된 개표결과지는 심인경 씨에게서 받았지만 문제의 관건은 수곡면에서 '새누리당을 찍지 않은 사전투표한 사람'을 어떻게 찾느냐다. 방법은 딱 하나다. 모든 인맥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조직국장에게 전화했다. 공보국장과는 말이 안 통했다. 그래서 그나마 가까운 조직국장에게 말한 것이다. 조직국장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개인적으로 친한 형님에게 얘기해서 힘을 넣도록 했다. 내가 아는 민주당계 인맥을 상당히 동원한 끝에 조직국장이 움직였다. 그리고 당원 명부를 뒤져서 수곡면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명이 나왔다.


수곡면은 농업지역이다. 농민이 많다. 농민회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전국농민회 사무총장이 마침 아는 사람이었다. 진주 수곡면 농민회에서 선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수곡면 농민회에서 2명이 나왔다. 이 3명을 찾아냈기에 기사가 됐고, 진주시 수곡면 사전투표 재검표가 이뤄졌다.


작년 여름에 쓴 '아파트 승강기 관리업체 1원 계약'도 마찬가지다. 1원 계약으로 '물을 흐리는 업체' 때문에 일감을 빼앗긴 업체의 제보로 취재가 시작됐다. 나는 기사를 쓰기 전 한번 만난 이후 결코 그 업체 사장과 만나지 않았고 지금 연락도 끊었지만 (딱 보아하니 접대할 사람이었다) 그 사장과 아예 무관한 기사라고 할 수는 없다. 내 기사로 누군가 불이익을 본다면 누군가는 이익을 볼 것이다. 어차피 승강기 업계가 뻔한 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사를 썼다. 승강기 1대 2년 관리금액이 1원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날림 관리는 물론이고 어딘가 다른 형태로 뒷돈이 오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기사는 국민안전처 장관까지 올라가 일제 점검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렇게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이미 깊숙이 사건에 개입할 일이 많다. 특히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깊이 연계될 수밖에 없다. 


2.


박근혜 대통령이 3차례 대국민담화(라고 쓰고 대국민통보라 읽는다)를 하고 얼마 전에는 청와대 기자단을 갑자기 불러 홀로 중얼중얼 온갖 소리를 쏟아내고 가버렸다. 말이 간담회지 사실 기자들이 한 텍스트의 비율은 0.5%나 될까 싶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있었지만 질문은 몇 개에 불과하다.


기계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한국언론의 문제가 JTBC기자의 정유라 신고처럼 '적극성(오바)' 때문에 문제일까? 아니면 소극성 때문에 문제일까? 나는 소극성 때문이라고 80% 이상은 생각한다.


내가 출입처가 있는 취재기자는 아니지만 들리는 말을 종합해 보면 출입처에서 보도자료 내면 질문하는 기자는 드물다고 한다. 경남으로 치면 한겨레나 경남도민일보처럼 깐깐한 언론 외에는 거의 질문이 없다고 한다. 많은 기자들이 출입처 논리(분위기)에 묻어 간다고 한다. 질문이 없는 기자들, 현장에 없는 기자들, 현장을 파고들지 않으려 하는 기자들. 그러니 기사들이 고만고만 비슷비슷하다. 일반인도 기사 몇 개 보면 기자인 나랑 수준이 비슷하다. 당연하다 비슷한 기사 비슷한 정보니 말이다. 한정된 정보지만 거기서라도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잘 안 보인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기자들이 소심해졌다고 본다. 편안한 출입처 시스템이 깔려 있고, 정권 차원에서 언론을 장악하고, 대드는 기자는 짤리거나 소송 당하고, 괜히 오바했다가 광고 짤리거나 사업 짤리면 누가 '적극성'을 가지고 오바하고 싶을까. 그냥 고만고만하게 쓰다가 기자칼럼 같은데서나 한 풀이 비슷하게 몇 마디 하는 게 많다. 이렇게 기자도 소심한 회사원, 공무원 마인드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경제도 어려운데 기자 때려 치우면 어디 가서 일하겠나?)


3.


나는  JTBC의 신고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글을 봤다. 내 입장은 이렇다.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최순실의 딸로 알려진 정유라 씨.



박상현 이사님은 '선'을 강조했다. 나는 그 선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어차피 새로운 시대다. 과거에 어떤 '선', '틀'이 무너져가는 시대다. 그래서 선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에 일단 나는 거부감을 갖는다. 애초에 취재란 굉장히 역동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영역이다. 선을 긋기 쉽지 않다. 솔직히 내 생각엔 취재 영역에 선을 긋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자들일 가능성이 크다. 선은 그으면 그을 수록 언론은 소심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만약 JTBC기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고 슬쩍 교민이나 유학생에게 흘려서 신고하도록 유도했다면 선을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더 심각한 팩트 침해라고 본다. 자기가 다 설계해 놓고는 자기는 우연히 알게 된 것처럼 쇼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식의 기사는 많았다. 어떤 기사가 나자마자 득달같이 고발이 이뤄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건 기자가 차마 직접 고발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 반대편에게 슬쩍 흘려서 손발을 맞춘 게 대부분이다. 내가 과거 미디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방통위에 '이런 저런 사례가 있다'고 하는 순간 사실상 기자가 방통위 과장에게 민원을 넣은 셈이나 다름 없다. 이처럼 그 선은 많이 허물어져왔고, 애초에 그 선이 옳은 것이라고 분명히 답하기 어렵다.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기사만 쓰고 앉아 있을 순 없질 않나. 미국의 사례를 들었는데, 사실 미국의 저널리즘과 한국 언론 현실과 단차원적으로 비교하는 글 자체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언론의 모습도 그 사회와 역사의 모습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게 있더라' 정도는 얘기 가능해도 '이래서 이래야 한다'고 규정하려면 훨씬 더 많은 연구와 근거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자는 외계인이 아니다. UFO타고 다니며 슬쩍슬쩍 사진 찍으며 인류나 지구체제를 분석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기자는 사람 사이에서 나오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을 디디고 사람의 언어로 기사를 공개한다. 보도자료를 베껴쓰지 않는 이상 기자가 직접 취재에 나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순간 이미 개입한 것이다. 이미 판도라의 문은 열려져 있었다.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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