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L의 토호문제연구소 :: [취재노트]늑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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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5. 17:20

[취재노트]늑대의 난 기타/역사2015. 10. 5. 17:20

1907년 일제는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했다. 이후 의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조선인은 총을 가지지 못하게 하라'고 방침을 세웠고, 포수가 가진 총마저 압수해 버렸다. 분개한 일부 포수들은 홍범도를 따라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총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먹이사슬에서도 강등되고 말았다. 1910년대부터 늑대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상위 포식자인 호랑이와 표범이 거의 사라지고, 사람들은 총이 없으니 늑대 무리는 민가를 식량공급원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 동안 호랑이와 표범에 물려 죽은 사람은 모두 75명이었으나, 늑대에 의해 죽은 사람은 1915년 한 해만 하더라도 113명에 달할 정도로 피해는 엄청났다. 이 또한 건성건성 집계한 것에 불과해 실제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늑대의 난'이었다. 일제는 이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급기야 1922년 6~7월 늑대 수백 마리가 부산과 동래 지역을 습격한다. 부산진 매립지에서 14살 아이를 물어가고, 초량진 수정동에서 늑대에게 뜯기고 발목만 남은 시신이 발견됐다. 서면 당감리에서는 9살 먹은 아이가 방안에서 물려갔다. 한반도 침략 전진기지인 부산지역이 늑대에게 습격당하자 그제야 일제는 자신들이 세웠던 방침을 포기하고 조선인 포수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늑대에 의한 희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해방과 전쟁 이후 늑대는 크게 줄어들었고, 1975년 전북 완주군에 나타난 것을 끝으로 늑대는 사실상 멸종됐다.


'늑대의 난'은 당시 식민지 민중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지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일제 도움으로 우리 민족이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임종금 출판미디어국 기자

Posted by 임종금 J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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